"북한의 김정일이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북한 공작원 김현희에게 친필 지령을 내려 KAL858기를 폭파시킨 사건이다."1988년 1월 15일 발표된 '안기부 수사보고서'(김현희 자필진술서를 근거로 작성)의 최종 분석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사건 당시부터 여러 가지 반론에 부닥쳐야 했다. 우선 범행의 시점과 동기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의혹들이 제기됐다. "왜 하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 사건이 발생했을까. 정말 우연한 일이었을까. 이 의문에 대해 답을 주는 일은 이 사건의 실체와 직결되어 있다. 범죄 수사의 기본은 그 사건을 통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현희의 진술대로 여객기를 폭파했지만 결과적으로 올림픽 개최를 막지도 못했고, 여당에 타격을 입히기는커녕 승리만 안겨주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잔혹한 테러 국가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최근 필자가 입수한 통일부 남북회담 사무국 자료에 따르면, 1987년 북한이 서울올림픽을 방해하려고 책동했다는 안기부의 주장과 달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주재 하에 남북한이 체육회담을 4차례나 열어 대화를 계속해 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북한은 체육회담에서 공동주최 원칙을 주장하며 IOC와 한국올림픽위원회(KOC)의 양보를 하나하나 받아내는 등 실리를 취하고 있었다. 실제로 필자가 체육회담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987년 7월 14∼15일 양일간에 걸쳐 로잔느의 IOC 본부에서 열린 제4차 남북체육회담에서 사마란치 위원장은 탁구, 양궁(남여), 여자배구, 1개조 축구 예선, 사이클 남자 개인 도로경기 등 5개 종목 경기를 북한 지역에서 북한 당국이 전적으로 주관해서 치루는 중재안을 내놓기까지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당시 국제 정세도 북한이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테러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매우 컸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무엇보다 먼저 북한의 혈맹인 중국마저 서울올림픽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북한에 분명히 밝힌 것이다. 실제로 중앙일보는 1987년 12월 4일자 기사에서 "조자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중국을 방문한 북한 수상 이근모에게 중국이 내년 서울올림픽에 참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보다 앞선 10월 하순 모스크바에서 열린 슐츠-셰바르드나제 미소 외무장관 회담에서도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문제가 거론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는 KAL858기 실종사건으로 국내 정세가 시끄럽던 12월 9일 열린 레이건-고르바초프 미소 정상회담 실무회담에서도 북한의 올림픽 일부 종목 개최는 중요한 안건으로 다루어졌다. 오는 11월 29일은 KAL858기 실종사건 18주기가 되는 날이다. 지난 세월 일방적으로 침묵을 강요받아왔던 유족들이 이 날을 앞두고 국회에서 토론회를 연다. 토론회의 주제는 'KAL858기 실종사건과 한국언론 보도행태'라고 한다. "언론이 처음부터 제대로만 보도했다면 진상규명 싸움이 18년이나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한 유족의 발언이 역시 언론인인 필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정지환(여의도통신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