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 눈앞이 가리도록 눈물을 떨구면서 눈물로 저 아그 앞길만 빌고 왔제……"
나는 목이 메고, 아이들은 목멘 내 목소리에 의아해한다.
왜 나는 <눈길>의 이 대목에서 어김없이 목이 메는 것일까?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어머니가 눈 위의 아들 발자국을 꼭꼭 디디며 돌아오는 모습. 한 시대 전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기도 한 그 장면에서 나는 어쩌지 못하고 늘 목이 멘다.
"선생님, 울어요?"
"아니, 그래."
가난한 어머니에게 결코 빚진 것이 없다는 아들의 항변은 자신이 어머니의 큰 사랑에 빚지고 있음을 깨달음으로써 무력해지지만,나는 교실의 아이들에게 내 마음을,가난한 어머니에 대해 느끼는 내 마음을 고스란히 전할 수 없는 한계를 느낀다. 내가 아는 어떤 시인은 "어머니에 대해서는 쓰고 싶지 않다"고 말하였던 적이 있다. 자신의 언어가 '어머니'를 훼손시키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뿌리는 불평하지 않는다./ 햇빛 못 보는 뿌리들이/ 햇빛 보겠다고/ 햇빛 받는 잎이나 줄기가 되겠다고/ 불평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줄기나 잎에게 대신/ 빛을 노래하게 하고
자신이 광을 내면/ 나무가 죽는 줄 이미 알고/ 완강히 빛을 거부하고/ 더 깊은 어둠 속 뚫고 들어가/ 끝끝들이 살을 밀어 올려/ 목숨 건 침묵의 노래/ 뿌리들의 합창/ 세상을 푸르게 한다.
어머니는 나의 뿌리/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시지 않으셨다./ 내가 숨을 쉬고 있는 한/ 어머니는 땅 속에서 나의 뿌리가 되어/ 나의 가지와 잎을 왕성하게/ 키워 내고 계시는,
정대구,<나의 뿌리> 전문
이 시는 시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 되던 해에 출간한 《어머니의 응답》이라는 시집에 실려 있다. 시집은 시인이 어머니를 추억하며 어머니께 바치는 시로 묶여 있다. 칠순의 나이인 시인에게도 어머니는 여전히 뿌리며 그리움이며 한 세계이다. "지난 날은 왜 이리 슬픈 것이냐…… 지난 날 이름 없는 것들아/ 이름 없는 것들아 지금 이름을 얻어서/ 후드득 후드득 눈물을 뿌리지 마라"로 시작하는 <가을날>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의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담고 있어 가슴이 아리는 시이다.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서 나의 배경이 되어 주는 어머니. 가난한 어머니는 설 자리가 작아지는 세상이 참 춥다.배정희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