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는 조선 후기 회화 발전에 이바지한 화가 최북(崔北ㆍ1712~1786년) 선생을 ‘12월의 문화 인물’로 선정했다. 출신 성분이 낮았던 최북은 전업화가였다. 그림 한 점 그려서 이를 팔아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술을 좋아했고 돈이 생기면 술과 기행으로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말년의 생활은 곤궁했고 비참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이 사대부 중심에서 일반 서민사회로 변화하는 문예부흥기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천민 출신인 화가가 서야 할 자리는 그림으로 생각을 표현 할 수밖에 없었다.최북의 그림은 초기 남종화풍의 화풍에서 후기 조선의 고유색 진경(眞景ㆍ실제의 경치를 그대로 그린 그림)산수화로 바뀐다. 천하에 놀기 좋아하고 구속 받지 않으려는 자유분방한 기질 때문에 국내의 금강산, 가야산, 단양 등은 물론 일본ㆍ중국까지도 다니면서, 중국 산수의 형세를 그린 그림만을 숭상하는 당시의 경향을 비판하고 조선의 산천을 찾아 직접 화폭에 담는 진경산수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삶의 각박함과 현실에 대한 저항적 기질을 기행과 취벽 등의 일화로 남겼다.그는 산수화는 물론 화훼, 영모, 괴석 등 모든 면에서 대담하고 파격적으로 뛰어난 기량을 보였으며, 취미가 다양하여 책읽기와 시 짓기를 좋아한 시ㆍ서ㆍ화 삼절의 화가였다.최북의 작고연도는 정확치 않다. 1712년 출생하여 49세 때인 1760년에 작고했다는 설과 75세인 1786년 설이 있는데 1786년을 주장하는 학설이 대세를 이룬다. 따라서 올해는 선생의 탄생 293년 서거 219년이 되는 해이다.200여 년 전 사회의 변혁기에 그림이란 예술장르를 통해 진경산수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고자 했고, 가난하지만 자연과 함께 살아간 최북의 그림은 <표훈사도(表訓寺圖)>, <공산무인도(公山無人圖)> 등이 있고 약 80여점의 작품이 전해지고 있다.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