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오뚝 솟은 코가 매력적이어서 ‘피노키오’라는 애칭을 가졌던 ‘녹색테이블의 여왕’ 현정화가 양산을 찾았다. 지난해 10월 ‘제1회 양산시장배 탁구대회’를 참관키 위해 양산에 왔던 현정화가 이번에는 양산시민신문이 주최한 ‘제1회 양산시민신문사배 영ㆍ호남 동호인 탁구대회’에 초청돼 또 다시 양산 나들이를 한 것이다.“지난 번 양산에 왔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넘었네요. 그 사이에 탁구인들이 많이 늘어 오늘 대회가 이처럼 큰 성황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날카로운 눈매와 높은 콧대에서 풍겨 나오는 이지적이면서도 도전적인 이미지로 상대를 하나하나 쓰러트리며 당시 역대 최강이라는 중국의 덩야핑 조차 이루지 못한 ‘세계선수권 그랜드슬램’을 이루며 탁구여왕에 등극했을 때의 그녀는 분명 불굴의 ‘여전사’였다. 그런 그녀도 이제 어느새 30대 중반을 넘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선수시절의 그 날선 눈빛이 아닌 무엇이라도 끌어안을 듯한 여유로운 눈길로 이곳 생활탁구인들의 경기모습을 지켜보면서 엷은 미소를 띠었다. 이야기는 자연히 남북 스포츠사상 처음으로 단일팀을 결성해 남북스포츠교류의 물꼬를 텄던 1991년 4월의 제41회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로 이어진다. “우리는 그 때 한 호텔에 묵었는데 북측 숙소가 5층, 우리 숙소가 6층이었어요. 공식적으로는 서로의 숙소를 찾아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는데도 우리는 몰래 5, 6층을 오르락내리락했어요. 당연한 말이지만 북쪽 선수들도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가슴이 뜨거웠어요. 그 때는 우리 모두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였잖아요. 특히 분희 언니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어요.”분희 언니? 현정화는 한 살 위의 북녘 선수 리분희를 스스럼없이 언니라고 불렀다.
천신만고 끝에 세계 최강 중국을 꺾고 여자단체 우승의 영광을 안음으로써 하나가 된 남북의 힘을 세계 만방에 과시했던 그 때의 그 감격을 현정화는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북쪽의 분희 언니도… 부산 출신의 탁구대표선수였던 아버지(현진호)로부터 탁구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현정화는 결혼도 탁구선수 출신의 김석만(전 포스데이타 코치)씨와 했다. 그러니 그 유전인자가 또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아마도 그녀는 올해 다섯 살인 딸 서연이와 세 살배기 아들 원준이가 어머니의 영광을 재현해 주기를 꿈꾸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