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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홍방울새 날개소리 가득한 그 곳..
사회

홍방울새 날개소리 가득한 그 곳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12/09 00:00 수정 2005.12.09 00:00

"난 나중에 제주도에서 살고 싶어."

"왜?"

"제주 바다가 좋아서. 수학여행 때 본 낙조(落照)가 너무 좋았어."

"우리 퇴직하면 다원이가 저리 좋다는 제주도 가서 몇 달 살까?"

"여행이나 하면서 살자고 했잖아. 우선 제주도 가서 한 일년 살면서 구석구석 다니지 뭐. 다원이 이야기처럼 낙조도 원 없이 보고."

"하하, 일년씩이나?" "마음 바뀌면 언제든 다른 곳에 가면 되지 뭐."

"참, 다원아. '낙조'하면 떠오르는 시 있니?"

"아빠, 좀 엉뚱하지만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이 떠오르네."

"왜 엉뚱하다고 말하는데?"

"참고서에 보면 그 시 어느 구석에도 낙조와 관련되는 구절은 없거든."

"그런데?"

"하지만 '저녁에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한 그곳'이라는 구절이 꼭 공감각으로 표현한 낙조 같았어. 제주 바다 낙조를 보며 그 구절을 떠올렸었거든."

"흠, 우리 딸 정말 시인이네."

"시 쓴 것도 아닌데 웬 시인?"

"읽기도 창작이잖아."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 / 벌 윙윙대는 숲 속에 나 혼자 살으리. // 거기서 얼마쯤 평화를 맛보리. / 평화는 천천히 내리는 것 /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에 이르기까지. / 한밤엔 온통 반짝이는 빛 / 한낮엔 보랏빛 환한 기색 / 저녁에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한 그곳. // 나 일어나 이제 가리, 밤이나 낮이나 /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 소리 들리나니. / 한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도(鋪道) 위에 서 있을 때면 / 내 마음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네.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전문

 
원시(原詩) 첫 구절 '나 일어나 이제 가리'는 성경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탕아(蕩兒)가 자신의 잘못된 삶을 반성하고 아버지께 돌아가 잘못을 빌겠다는 말이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런던에서의) 삶이 타락한 삶이었다는 말이다. 타락한 도시에서의 삶을 접고 고향(본향) 이니스프리로 돌아가 더없이 소박한 자연의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이다. 2연에는 이니스프리의 전경이 묘사되어 있다.

새벽 미명(未明)부터 밤중까지, 한밤엔 도시 런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온통 반짝이는 하늘의 별들, 한낮엔 호숫가를 두른 히스꽃 무리지어 온통 보랏빛 가득한 세상. 저녁엔 홍방울새 떼 지어 하늘 가득 덮어 내리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그 날갯짓 소리 같은 아름다운 저녁놀 내리는 모습. 혼탁하고 답답한 도회의 타락한 삶에 지칠수록 그 아름다운 이니스프리 호수 물결소리 들린다.

"아빠, 화자가 런던 교외에 있는 예술인촌에서 나와 결국 이니스프리로 돌아가서 살았을까?"

"아니."

"왜, 아닌데?" "그냥 꿈꾸어 본 거잖아. 살아야 하는 현실이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훌쩍 떠날 수 있겠어. '귀거래사'를 쓴 도연명이나 그렇게 훌쩍 돌아갔지. '남으로 창으로 내겠소'를 쓴 김상용도 자연으로 아주 돌아간 것은 아니라고 들었다."

"그럼 거짓말이네."

"하하, 그래서 문학을 '허구'라 하지. '허구'란 꾸며낸 것이라는 말이잖아."

"……."

"꿈꾸는데 세금 내는 것 아니잖아. 다원이가 제주도 바닷가에 작은 오두막 지어 놓고 거기서 책 보다가 가끔은 자전거도 타고, 아니면 오두막 안에서 하루 종일 뒹굴다가 홍방울새 날개소리 가득 쏟아져 내리는 저녁 놀 보는 것 꿈꾸어 좋은 것처럼 이런 시도 그런 꿈 꿈꾸어 보는 것이라 할 수 있지 뭐."

"그럼, 아빠 꿈은 뭔데?"

"소혹성에 앉아서 해지는 것 보다가 의자 뒤로 물려서 또 보고 또 보고 하는 것. 소혹성에도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하다면."

"히~ 아빠가 뭐 어린 왕자야?"

 

문학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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