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몽골 제국의 규모가 알렉산더 대왕(3백48만㎢)과 나폴레옹 황제(1백15만㎢)와 히틀러 총통(2백19만㎢) 등 세 정복자가 차지했던 면적을 합친 것보다 더 크고 넓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칭기스칸 생존 당시 몽골 인구는 1백만∼2백만 명이었다. 더욱이 유럽 정벌을 위해 파견된 몽골군은 4만 명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몽골이 2천5백만 명의 유럽인은 물론이고 중국, 이슬람까지 포함할 경우 1억∼2억 명에 이르는 세력을 정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이 책에 따르면, 그 열쇠는 바로 ‘속도’였다. 몽골군은 가축으로 키운 말을 이용해 ‘거추장스러운’ 보병과 보급선을 두지 않는 기병체제를 만들었다. 보통 한 달 걸릴 지방의 보고라도 1주일이면 받아볼 수 있게 만들었던 ‘8백년 전 인터넷’인 역참제(驛站制)도 그 속도가 일궈낸 놀라운 성과였음은 물론이다.몽골군은 속도를 늘리기 위해 군사 장비도 경량화 했다. 예컨대 당시 유럽 기사단의 갑옷과 전투 무기의 무게는 70㎏에 이르렀지만 몽골군의 그것은 10분의 1인 7㎏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CEO 칭기스칸>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유럽 병사들은 <기사 윌리엄> 같은 영화에서 보듯 철갑 통으로 된 갑옷을 입었다. 외관은 그럴싸할지 몰라도 기동성은 당연히 떨어진다. 그들의 동작은 굼떴고, 팔 움직임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긴 창을 가지고 다녔고, 정면만을 향해 돌진하며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경량화 전략은 무기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다. 군량(軍糧) 무게를 줄이는 것도 행군 속도를 높이는 방법의 하나로 채택됐다. 몽골군이 전쟁을 나갈 때 애용했던 보르츠(육포). 소 한 마리 분의 고기를 말린 이 비상식량은 소 방광에 모두 들어가 운반하기 간편하고 가벼우면서도, 병사 한 명의 1년 식량으로 너끈했다. 유럽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던 호라즘 제국이 추풍낙엽처럼 무너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금은 사라진 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는 1년 안에는 누구도 함락시킬 수 없다던 거대한 요새였다. 그러나 몽골군은 단 사흘만에 이 요새를 장악했다. 상식적으로 1년 뒤에나 도착해야 할 군대가 몇 달만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렇다. 몽골 제국을 가능케 했던 것은, 불필요한 것은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벼움의 철학이었다. 화려하지만 무겁고 실속 없는 갑옷을 걸친 채 거드름만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일이다. 여의도통신 김지환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