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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여의도칼럼]몽골 기마병..
사회

[여의도칼럼]몽골 기마병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12/16 00:00 수정 2005.12.16 00:00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CEO 칭기스칸>을 최근 흥미롭게 읽었다. ‘유목민에게 배우는 21세기 경영전략’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필자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칭기스칸의 뛰어난 리더십에 의해 창조되고 운영됐던 몽골 제국의 신화는 특히 ‘규모와 속도의 관계’에 대한 역발상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던져주었다.

우선 칭기스칸 시대에 몽골이 정복한 땅의 면적은 7백77만㎢에 달했다고 한다.
그것은 몽골 제국의 규모가 알렉산더 대왕(3백48만㎢)과 나폴레옹 황제(1백15만㎢)와 히틀러 총통(2백19만㎢) 등 세 정복자가 차지했던 면적을 합친 것보다 더 크고 넓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칭기스칸 생존 당시 몽골 인구는 1백만∼2백만 명이었다. 더욱이 유럽 정벌을 위해 파견된 몽골군은 4만 명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몽골이 2천5백만 명의 유럽인은 물론이고 중국, 이슬람까지 포함할 경우 1억∼2억 명에 이르는 세력을 정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이 책에 따르면, 그 열쇠는 바로 ‘속도’였다. 몽골군은 가축으로 키운 말을 이용해 ‘거추장스러운’ 보병과 보급선을 두지 않는 기병체제를 만들었다.

보통 한 달 걸릴 지방의 보고라도 1주일이면 받아볼 수 있게 만들었던 ‘8백년 전 인터넷’인 역참제(驛站制)도 그 속도가 일궈낸 놀라운 성과였음은 물론이다.

몽골군은 속도를 늘리기 위해 군사 장비도 경량화 했다. 예컨대 당시 유럽 기사단의 갑옷과 전투 무기의 무게는 70㎏에 이르렀지만 몽골군의 그것은 10분의 1인 7㎏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CEO 칭기스칸>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유럽 병사들은 <기사 윌리엄> 같은 영화에서 보듯 철갑 통으로 된 갑옷을 입었다. 외관은 그럴싸할지 몰라도 기동성은 당연히 떨어진다. 그들의 동작은 굼떴고, 팔 움직임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긴 창을 가지고 다녔고, 정면만을 향해 돌진하며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경량화 전략은 무기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다. 군량(軍糧) 무게를 줄이는 것도 행군 속도를 높이는 방법의 하나로 채택됐다. 몽골군이 전쟁을 나갈 때 애용했던 보르츠(육포). 소 한 마리 분의 고기를 말린 이 비상식량은 소 방광에 모두 들어가 운반하기 간편하고 가벼우면서도, 병사 한 명의 1년 식량으로 너끈했다.

유럽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던 호라즘 제국이 추풍낙엽처럼 무너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금은 사라진 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는 1년 안에는 누구도 함락시킬 수 없다던 거대한 요새였다. 그러나 몽골군은 단 사흘만에 이 요새를 장악했다. 상식적으로 1년 뒤에나 도착해야 할 군대가 몇 달만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렇다. 몽골 제국을 가능케 했던 것은, 불필요한 것은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벼움의 철학이었다.

화려하지만 무겁고 실속 없는 갑옷을 걸친 채 거드름만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일이다. 

 

여의도통신 김지환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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