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가기가 겁나고, 갈 때마다 불편하고 짜증을 느끼는 서민들이 요즘 많다"고 한다. 문화일보 12월 14일자 '여론마당'에 의견을 올린 김계현씨에 따르면 "은행들이 일반 서민들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아예 이용하지 말라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라는 것이다. IMF 사태 직후 다 죽어 가는 은행들을 '금 모으기'와 공적자금(서민들의 세금)으로 살려 놓았더니, 정말이지 이런 배은망덕이 없다. 이 같은 사태는 아주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다. 서민들은 '돈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은행의 입장에서 서민들은 푼돈이나 입금하고 빌려 가는 주제에, 이자도 '적게' 내는 2등 고객일 뿐이다. 그래서 서민들과의 '푼돈 거래'는 인건비 많이 드는 은행원들이 아니라 CD기 등 자동화기계로 '일괄 처리'하면 그만이다. 반면 금융기법에 능숙한 일부 고숙련 정규직은 수익률 높은 부유층 자산관리 등에 동원한다. '은행 가기가 겁나는 것'은 서민층만이 아니다. 중소기업인들이나 지역 경제인들도 마찬가지다. 자금이 가장 절실한 사람들에게 도리어 금융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IMF 사태 이후의 금융개혁으로 은행들이 다음과 같은 체질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첫째, 은행 경영에서 '수익성 지상주의'이다. 높은 수익만 노린다면 가급적 기업 대출은 삼가고 신용카드를 남발해 '약탈적 이자'를 긁어 들이는 것이 낫다. 기업은 성공할지 실패할지가 확실하지 않은데다 상환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불량 고객'이다.
둘째, 대출을 극도로 꺼리게 되었다. 돈을 빌려줬다가 돌려 받지 못할 위험(리스크)이 '상당히 작지 않으면' 대출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한덕수 재경부 장관이 말한 대로 "유망한 중소기업이나 기술집약형 차세대 성장산업들도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대출이 어려울 정도이다. 경제의 혈맥이라는 은행이 이 모양인데 경제가 잘 돌아간다면 오히려 이상할 일일 것이다.은행들은 IMF 사태 이후 지난 8년여 동안 이상과 같은 방향으로 운영하면 생존할 수 있고, 아니면 구조조정 당할 수밖에 없다는 유무형의 압박을 정부로부터 받아왔다. 특히 '단기간의 큰 수익'을 추구하는 외국인 주주들이 장악한 대형은행들은 때로는 정부까지 무시하며 은행들의 이 같은 변화를 선도해왔다. 그러나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의 '혁명적 금융개혁' 발언을 감안하면, 참여정부는 서민-중소기업-지방 등에 대한 금융소외 현상을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 '혁명적 금융개혁'은 결국 은행들의 규모를 키워 고위험-고수익의 주식, 자산운용, 사모펀드 등에서 해외 초대형 금융기업들과 경쟁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은행들의 '수익성 지상주의'와 '대출 기피' 성향을 더욱 강화시켜 금융소외층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에서는 새로운 두개의 계급이 무서운 기세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자본가/노동자가 아니라 '돈을 빌릴 수 있는 소수'와 '돈을 빌릴 수 없는 다수' 간의 날카로운 대립이다.이종태/쾌도난마 한국경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