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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굽은 솔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12/23 00:00 수정 2005.12.23 00:00

한 자리에서 20년 넘게 아이들 가르치고 아이들에게 배우며 살다보니 초임시절 맡았던 녀석들 벌써 중년이다.

그 중 어떤 녀석들은 고생이 심했던지 겉늙어 어떻게 보면 나랑 비슷한 연배로 보이기도 한다.
굽은 솔이 선산(先山) 지킨다고 했던가.

예외는 있지만 공부 잘 한 녀석들은 대부분 대처로 나갔다. 고향 지키는 녀석들은 대개 학교 다닐 때 두드러지지 않았던 아이들이다.

선생인 내 눈엔 어떤 아이들이 예쁠까? 초롱초롱 맑은 눈으로 수업시간 집중하여 잘 듣는 아이들이 제일 예쁘다.

굽은 솔이 아니라 곧은 솔이다. 푸른 하늘을 향해 우듬지를 쭉쭉 뻗어 나가는 녀석들이다.

하는 짓이, 겉모습이, 마음 씀씀이가 예뻐서 예쁜 녀석들도 있다. 나름대로 잘 돌보면 나중에 재목이 될 수 있는 녀석들이다. 그런데 가끔은 수업 잘 듣지도 않고 하는 짓도, 겉모습도, 마음 씀씀이도 그리 예쁘지 않은데도 마음이 끌리고 예쁜 녀석들이 있다.

굽은 대로 뒤틀린 대로 세상에 쓰일 부분이 있는 녀석들이면서 나와 인연 있는 녀석들일 것이다.  미운 짓 골라 하는 녀석들도 이렇게 저렇게 뜯어보면 예쁜 구석이 참 많다.
 
사람들아 아는가 / 희망으로 채우지 못한 것이 / 그대 가슴을 향해 / 길을 내고 있음을 // 정원을 어지럽힌다고 / 아무렇게나 쓸어버린 낙엽이 / 밭이랑을 일구던 지렁이에게 / 먹이를 주고 있었네.
정소슬의 '쓸어버린 낙엽이'전문 

삶을 예쁘고 고운, 마음에 드는 것만으로 채우려 하면 얼마나 채울 수 있을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다 솎아내고 나면 얼마나 남을까.
부족하고 못마땅한 것들도 다 내 자신의 한 부분이니 보듬어 안고 가야 하는 것 아닐까.
그 부족한 부분들이 어쩌면 내 삶에 새로운 길을 내고 또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한 해의 끝이다.
한 해 동안 이쁜 짓 해서 이쁜 녀석들, 이쁜 짓 하지 않아도 이쁜 녀석들 많았다.
그리고 참 많이 애먹인 녀석들도 있었다. 다 이제 곧 한 학년 진급한다.

새 학년 맡으면 나는 이제 이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진작 잘라 버렸어야 하는 녀석들 저 욕먹지 않으려고 올려 보내 내 손으로 자르게 한다는 불평은.

나는 얼마나 잘났을까.
이쪽이 햇살이 조금 더 따뜻하리라 여겨 이쪽으로 굽혀보고 또 조금 있다가는 저쪽이 더 따뜻하고 밝은 햇살이려니 여겨 저쪽으로 굽혀서 이리저리 뒤틀린 모습이 기괴하리라.

게다가 여기저기 내 스스로 생각 없이 찢어버린 가지, 또 우악스런 바람에 찢겨진 가지.
상처 입은 곳마다 옹이진 곳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이렇게 굽고 뒤틀렸다고 내가 나를 버릴까.  굽은 것은 굽은 것으로 뒤틀린 것은 뒤틀린 것으로 안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문학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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