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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결핵과의 싸움
사회

결핵과의 싸움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12/30 00:00 수정 2005.12.30 00:00

한국에 최초로 ‘크리스마스실’을 만든 사람은 선교사 샤우트 홀이다.

그는 1893년 11월 10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모는 한국에 의료 선교를 온 선교사였다.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은 청일전쟁으로 초토화 된 평양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환자들과 부상자들을 돌보았다. 그러다 그는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고 결국은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였다.

그의 마지막 유언 중에 하나가 아내에게 ‘그가 평양에 간 것을 원망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의 부인은 임신7개월이었는데, 뱃속의 아기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태어났다. 그 미망인은 남편의 뒤를 이어 병원과 더불어 여자와 어린이를 위한 학교,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 등을 세우며 활동을 계속했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태어난 딸은 3살에 이질에 걸려 한국에서 사망했다. 남은 아들 하나는 의사가 되어 아버지와 여동생이 묻힌 한국의 결핵퇴치를 위해 활동을 했다.

당시에는 불치의 병으로 알려진 결핵을 퇴치하기 위해 해주에 한국 최초의 결핵요양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결핵퇴치 자금을 위한 ‘크리스마스실’을 만들었다. ‘크리스마스실’을 만들 때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반대했었다.

그러나 그는 결핵을 하늘의 형벌인 냥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한국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결핵환자들의 삶에 소망을 주고 싶은 마음에 1932년 12월 3일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했다.

첫 도안은 결핵을 향해 대포를 겨냥하는 마음으로 거북선을 택했었다. 그러나 일본의 반대를 감안하여 결핵을 방어하는 성루가 되길 바라며 남대문으로 바꾸었다. 최초의 실을 산 사람은 배재학당의 아펜셀러 목사였으며, 실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아 결핵퇴치의 자원이 되었다.

첫 해의 수익금은 무료 환자 치료를 위해 몇 몇 병원에 나누어 주었고, 결핵 서적 구입과 연구, 병리 실험비로 책정했다. 불치의 병과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크리스마스실은 태어났다. 결핵 때문에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  태어났다.

새 해는 온갖 절망과 싸우며, 소망이 넘치는 한 해가 되길 염원한다. ‘크리스마스실’처럼…

박인서 목사 (웅상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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