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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희망의 백지 한 장
사회

희망의 백지 한 장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12/30 00:00 수정 2005.12.30 00:00

한 통의 전화. 주소를 알려달라고 한다.

친구가 쓴 요가책을 서른 권 샀다고. 책을 보내주겠다고. 고구마도 함께 보내겠다 한다.
고맙다.

가난한 시인이 산 서른 권의 책. 왜 그렇게 많이 샀냐고 했더니, 평생 잊지 못할 사람들에게 보내 주려고 샀다 한다.

평생 잊지 못할 사람이라는 말이 뻥뻥 가슴을 때린다.

망년(忘年)의 시간에 누군가에게 평생 잊지 못할 한 사람이 된 나는 행복하다. 그리고 오랫동안 행복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즈음 잊어버리기 위해 애를 쓰고 살아야 하나,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살아야 하나. 나 원 참…
 
거짓말처럼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올 한해 주어진 시간들은 이제 영원히 나에게서 떠나가고 시간만큼 좀 더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지고, 노쇠해졌을 것이다.

잔소리가 좀 더 심해지지는 않았나, 눈치 없이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나, 약간의 이득을 위해 경우나 상식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나 조금 되돌아보아야 할 시간이다.

며칠 뒤엔 새해를 다시 받을 것이고, 다시 받아서는 올해처럼 또 그렇게 써 버리겠지만, 해마다 새로 받는 한해라는 선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보낸 어리석은 날들이 해가 갈수록 안타깝다.

나이가 드는가 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때가 멀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참 좋은 시절`을 떠올리고 있으니… 야박한 시간 앞에서 내 의지는 얼마나 허약한 슬픔이냐. 올해가 가기 전에 만나야 할 것들은 만나고, 보내야 할 것들은 보내고, 잊어야 할 것들은 잊자.

망년의 시간을 알뜰하게 즐기자. (다함께 차차차)
그리고 새해를 다시 받아, 인생의 수험생이 될 수밖에. 절대로 여백은 없는 한 해의 수험생이.
 
다시 받는다
서설처럼 차고 빛부신
희망의 백지 한 장
누구나 공평하게 새로 받는다
이 순백의 반듯한 여백 위에
무엇이든 시작하면 잘될 것 같아
가슴 설레는 시험지 한 장
절대로 여벌은 없다
나는 또 무엇부터 적을까?
소학교 운동회날 억지로
스타트 라인에 선 아이처럼
도무지 난감하고 두렵다
이번만은 기필코……
인생에 대하여
행복에 대하여
건강에 대하여
몇 번씩 고쳐 쓰는 답안지
그러나 정답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재수인가? 삼수인가?
아니면 영원한 未知修인가?
문득 내 나이가 무겁다
창문 밖 늙은 감나무 위엔
새 조끼를 입고 온 까치 한 쌍
까작까작 안부를 묻는다, 내내
소식 없던 친구의 연하장처럼
근하신년! 해피 뉴 이어! 

임영조 <새해를 향하여> 전문
 
소식 없던 친구의 연하장처럼 한 해 동안 어지러운 글을 읽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지면을 빌어 전한다.

더불어 모두에게 희망의 백지 한 장이 되기를 기원하며

근하신년! 해피 뉴 이어!

배정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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