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서는 복 많이 지으라는 말도 하고 듣는다.이 풍진(風塵) 세상으로 나올 때 골라서 지고 나올 것 하나만 고르라면 이것저것 다 던져두고 지니기에 무겁지도 않고 귀찮지도 않은 복이란 것 지고 나오는 것이 제일이라는 옛말도 있다.복(福)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1. 아주 좋은 운수, 2. 배당되는 몫이 많음의 비유'로 나와 있다. 이런 사전적인 뜻 말고도 이런저런 뜻으로 많이 쓰이겠지만 난 복을 선업(善業)이라 하고 싶다. 복이 선업이라면 받으려 한다고 그저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냥 받으려 하지 말고 악업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씻어내고 선업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더 많이 지으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매양 추위 속에 /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 파릇한 미나리싹이 / 봄날을 꿈꾸듯 // 새해는 참고 /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 오늘 아침 / 따뜻한 한 잔 술과 //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 세상은 /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 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 한 해가 가고 / 또 올지라도 //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 고운 이빨을 보듯 //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김종길의 <설날 아침에> 전문설날 아침이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시다. 시골에서 자라 미나리꽝에서 썰매를 지치고 팽이를 치고 그 미나리꽝 얼음 너머로 연을 날리며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 파릇한 미나리싹이 / 봄날을 꿈꾸듯'이란 구절이 눈에 선하게 떠올라 이 시가 더 좋은 것이다. 어린 것들 키워봤으니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 고운 이빨을 보듯'이란 구절도 선명한 심상으로 살아난다.
교사나 성직자는 전생 업(業)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해마다 수백에 가까운 아이들을 새로 만나 연(緣)을 맺는 교사는 더 업이 많은 사람이라 한다. 어느 직업이 있어 해마다 새로운 사람을 수백 씩 만나 1년 이상 이리 깊은 연을 맺을까.
더구나 그 어린 사람의 성장에 영향을 끼치는 무거운 업을 쌓을까.아이들은 선생의 희망이다.
그 희망은 얼음장 밑에서도 파릇한 미나리싹 같이 봄날을 꿈꾸고 그 미나리싹 틈에 끼어 팔락거리는 고기 아가미 같이 곱게 살아 있는 법이다.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선업이든 악업이든 그 업은 내생까지 갈 것도 없다 한다. 이생에서 다 받는다 한다.
새해 복(福) 많이 지으세요.배정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