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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용서할 것들을 위하여
사회

용서할 것들을 위하여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01/13 00:00 수정 2006.01.13 00:00

드디어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를 완독하였다.

백 페이지 그 어름에서 손을 놓아버린 책. 병술년 독서목록 일번에 놓아둔 책. '시간 나면'이 아니라 '시간 내어' 읽어 보아야 했던 것을, 책에게 미안하다.
이 아프고 슬픈 책에 대한 감상을 아래의 시 한편으로 대신한다.
 
미당 선생 고향에 묻히는 날
어금니 뽑으러 나는 치과에 간다
함께 조문 가자던 친지들이
하필 오늘 뽑느냐고
투덜거리며 전화를 끊는다
 
투덜거리지들 마시라, 핑계가 아니다
미당 선생은 따뜻한 산자락에 묻히고
내 어금니는 단골 치과 피 묻은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소주병도 척척 까던 어금니
미움도 절망도 야물게 씹어삼키던
이 세상 험한 꼴들을
이를 악물고 용서하던 어금니
오랜 세월 시리고 욱신거리고
악취 머금고 치과에 드나들면서
뽑지 말고 어떻게든 살려보자던
이제는 혀만 닿아도 캄캄하게 아픈 어금니

아픔도 오래 견디면 슬퍼지는가
뽑아버릴 어금니처럼
혀만 닿아도 캄캄하게 아픈 슬픈 시인아
욱신거리며 그를 조문 가는 대신
야물게 씹어삼킬 것들을 위하여
이를 악물고 용서할 것들을 위하여
 
차창 밖 눈 녹는 겨울햇살이
어금니 속에 시리게 꽂힌다
 
정양, <어금니>전편
 
부끄러울 것 없는 인생이란 상대를 주눅들게 만드는 법이다.

슬픈 조국이여, 위대한 백범이여. 투사가 되지 못했던 슬픈 시인을 용서하시라.

우리는 모두 조금은 치사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세상을 각자의 방식대로 조금은 치사하고 더럽고 아니꼽게 살아가고 있으니, 누가 가련한 그 여자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보통의 방식 -조금은 아니꼽고 치사하고 더럽게 버티면서 살아가는- 그 보통의 방식으로 술렁거리며 살아가도 무엇이 그리 큰 문제가 되겠는가?

하지만 보통 이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란 조금은 다르게 살아가는 것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그들 앞에 기꺼이 '위대한'이라거나 '독보적인'이라거나 '민족의'라는 수식어를 붙여주는 것 아닌가. (이름 붙여 주는 것은 정부도 아니고 언론도 아니고 순전히 우리들 몫이다.) 그 수식어 하나 달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미당 서정주 선생이 고향에 묻히는 날 화자는 치과에 어금니를 뽑으러 간다.  미당선생께 조문을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 것이다. 미당이 따뜻한 산자락에 묻힐 것이라는 화자의 소망은 이미 미당을 용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용서는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쉽게 이루어지는 용서는 용서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어금니 악물고 용서한다는 것이 어찌 쉽게 이루어지겠는가. 아픔도 오래 견디면 슬퍼진다고, 생각만 하여도 캄캄하게 아프고 슬픈 시인 미당을 용서하기 위하여 이를 악무는 화자의 모습이 처연하다.

이 시는 화자가 미당을 용서하였지만 그를 조문하지 못하는 데서 더욱 슬퍼진다. 일제 강점 35년, 그 뼈아픈 역사에 미당이 '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귀촉도 중에서)'로 울고 있다.

배정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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