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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보충수업 없는 방학
사회

보충수업 없는 방학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01/13 00:00 수정 2006.01.13 00:00

오랜만에 보충수업 없는 방학을 보내게 되었다. 교사가 된 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동안 방학 때마다 보충수업을 해야 했다.

참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학기 중에도 보충수업으로 아이들과 씨름하다 찌들려 살았는데 방학마저 보충수업으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이들만큼이나 짜증부터 났었다.

이번 방학에는 다행히 졸업을 앞둔 3학년 담임이라 보충수업이 없어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 것 같아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방학이 시작되고 보니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평소 보충수업 없는 방학이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원했으면서도 정작 그렇게 되고 보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허둥대고만 있다.

이렇게 되니 방학이 반갑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몇 번의 여행이 예정되어 있어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다.

방학을 시작하자마자 동학년 선생님들과 여수와 거문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갓김치로 유명한 돌산도의 향일암에서 맑고 시원한 바다를 보았고, 거문도에서는 머나 먼 이국 땅에서 숨진 쓸쓸한 영국군 묘지를 보고 왔다.

거문도의 영국군 묘지 앞에서 지난 역사를 되새기며 동행한 선생님들은 또 사진을 찍었다.
왜 사진을 찍느냐는 물음에 수업자료로 쓸 거라고 한다. 단순한 여행이라고 하지만 천상 선생은 선생인 모양이라 거기서도 가르칠 일을 생각한다.

돌아와서 며칠 후 2박 3일 간의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몇 년 동안 얼마씩 돈을 내서 모은 것이 여행을 갈 정도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정해진 여행이었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3시간 정도 걸려 후쿠오카에 닿았다. 처음 본 일본에 대한 인상은 도시가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다.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빡빡한 일정이라 머리 속에 풍경을 담고 마음으로 느끼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그저 일행들과 멋진 배경을 만들어 사진만 찍어댔다.

돌아와 기억에 남는 걸 떠올려 보니 두 가지다. 하나는 후쿠오카 시내에 있는 태재부천만궁이라는 신사에 간 일이다.

이 신사는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신 신사라고 하는데 그곳에도 우리의 입시풍속도와 비슷하게 수많은 수험생들이 시험에 합격을 기원하는 곳이라고 한다. 입시철의 우리 모습이 겹쳐진다.

또 한 가지는 벳푸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우거진 삼나무 숲에 대한 안내자의 설명이다. 삼나무 숲이 우거진 것은 미래를 위해 일본인들이 나무 한 그루를 베면 두 그루의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을 바라보니 보충수업 없는 방학을 즐길 수 있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방학이면 늘 보충수업이라는 것에 얽매여 있다가 갑자기 놓여나니 스스로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입시를 끝낸 3학년 아이들도 갑자기 자유로워지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오래 학교생활을 하는 교사들이나 학생들은 방학만은 자유롭고 싶다. 그러나 입시라는 현실은 그걸 오래 유보하도록 한다. 유보된 일을 어느 날 다시 하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쉽게 적응하기 어렵다.

학교에서 자율을 실현하기 어려운 건 이런 이유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타율이 아닌 자율을 실현하는 연습을 이 방학에 아이들이 제대로 해보았으면 한다.

유병준교사 남부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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