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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열정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01/20 00:00 수정 2006.01.20 00:00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잘 알려진 이생진 시인을 《주변인과 시》 창간 30호 기념 특집 '시인을 만나다' 편에 초대했다. 일흔 여덟 청년 이생진 시인이 서울에서 한달음에 달려왔다.

"선생님 시 때문에 사람 하나 죽을 뻔했던 이야기 하나 할게요. 대학 3학년 때였나? 친구 셋이 한 사람 다음 학기 등록금을 들고 동해 바닷가에 가서 밤새워 술을 마셨어요. 섬은 아니었지만 갯바위가 섬처럼 튀어나온 곳이었어요. '술은 내가 마시는데 /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라는 말에 취해 빈 소줏병을 바닷물이 있는 곳에서부터 바위를 한 바퀴 빙둘러놓고 다시 위에 우리가 앉아 있던 곳까지 거진 다 세웠어요. 그런데, 어? 셋 중에 한 명이 없는 거였어요. 갯바위 아래 바닷물에 빠진 녀석을 간신히 건져 내었죠." 편집인을 맡고 있는 주선(酒先 술 선생) 박영봉 선생이 일화 하나를 슬며시 꺼냈다.

"하하, 그 구절 때문에 소주 매출량이 엄청 늘었다고 하던데 소주 회사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내게 감사패 하나 보내지 않더군."
"하하하하."
"누군가 내게 그러더군. '당신은 돈도 안 들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섬들을 독점해 버렸어. 이 나라에서 누군가 섬으로 시를 써서 성공하자면 오랜 세월이 흘러야 할 거야.'라고."
"하하, 선생님 시 보니 수십 년 섬 사랑에 빠져서 거기 들인 시간은 계산하지 않더라도 그 동안 섬에 오가며 들인 돈 다 더하면 적게 잡아도 아파트 몇 채 값은 되겠던데요."
"하긴 방학마다 섬에 가서 살았지. 방학 아닐 때에도 주말이면 섬에 갔으니."
"그런데 선생님 시는 아주 짧은 것들이 많던데요. '성산포'를 봐도 그렇고."
"방학 때 성산포 민박집에서 한 달씩 보낸 적들이 있어. 일출봉에 올라가서 시상이 떠올라 쓰려고 뒤져보면 껌종이밖에 없었어. 그래서 그 껌종이에 썼지. 껌종이가 모자라면 왼손바닥에까지 쓰고. 그래서 더 짧았을거야."
"시 쓰는 일 어떻게 시작했나요?"
"시가 좋아서 했지. 처음엔 두 명이 동인을 했어. 시 쓰는 게 그냥 좋았지. 참 여기 모인 시인들 시집 낸 사람이 많지 않다던데. 어떤 출판사에서 내 시집 한 권 내주지 않나 하고 바라지 말고 내 돈으로 내는 것이 더 떳떳해. 써 둔 시가 충분하면 계를 붓거나 해서라도 시집부터 묶어 내야 해."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못해 / 부두에서 노동일을 하면서도 / 지게를 지고 그림을 그렸어 / 밥은 굶어도 그림은 쉬지 않으려고 / 포장마차 목로에 앉아서 그림을 그렸어 / 그림만 그리고 사는 세상은 없나 // 나보고 스탈린을 그리라고 / 스탈린 밑에서 잘 먹고 잘 산 게 뭐야 / 나보고 빨갱이라고 / 날 고발해서 잘 된 게 뭐야 / 그래 춘화다 / 없어서 은박지에 못으로 그린 그림이 춘화라구? / 너도 벗으면 춘화야 / 네가 벗기 싫으면 내가 벗으마 / 내가 옷을 벗을 테니 춘화를 봐 / 덜렁 불알 두 쪽 / 황소의 불알을 봤지 / 그게 황소의 춘화야 / 자 춘화를 보라구 / 이 세상에 잘못 태어난 / 이중섭의 춘화를 보라구 / 너도 벗으면 춘화야
이생진의 <이중섭의 춘화 - 서귀포에서> 전문

두 시간 넘게 자신의 시세계에 대한 질문에 대해 열정적으로 답하더니 늙은 청년은 샛노란 목도리를 하고 자신이 직접 모사한 고흐의 그림을 걸어두고 '열정'을 주제로 시 퍼포먼스를 한다. 고흐의 그 미친 열정을 사랑하여 시로 미치고 싶은 늙은 시인의 그 열정이 눈부시다. 한 번 크게 미치거나 오래 미치지 않고 세상에 알려질 만한 큰일을 해낼 수 있을까. 늙은 청년 이생진은 시에 한 생애를 걸고 아직까지도 미쳐 있는 사람이다.

나는 얼마나 미쳐 있는가.

 

문학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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