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양산지회가 해마다 준비해서 떠난 교육기행이 10회째가 되었다. 단순히 눈과 귀를 즐겁게만 하는 여행이 아니었기에 여행은 삶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이란 생각을 했다. 어떤 동물들은 자신의 배설물로 삶의 영역을 표시하고 확인한다고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는 여행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일인 것 같다. 이번에 교육기행으로 떠난 곳은 제주도였다. 2004년에도 갔었지만 다시 한 번 더 제주도를 보고 싶다는 여러 사람의 의견으로 정해진 것이었다. 여정은 처음부터 힘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의 풍광을 느끼기도 전에 역사의 진실과 대면해야 했으니 말이다. 일제가 만들었다는 알뜨르 비행장의 격납고를 지나 4·3 현장인 섯알오름 학살터에 갔다. 이곳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묘를 만들었는데 여러 시신을 구분할 수 없어 백 할아버지의 한 자손이 묻힌 무덤이라는 뜻으로 ‘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라고 붙였다고 한다. 추모의 묵념을 올리며 역사의 아픔을 느꼈다. 그러나 이 정도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체험에 불과했다. 점심을 먹고 간 곳은 4·3때 사람들의 피난처로 이용되었던 ‘큰넓궤’라는 동굴이었다. 굴 입구는 상당히 좁아서 겨우 한 사람이 기어서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를 지나 10m를 들어가니 2~3m 높이의 절벽이 나타났다. 손전등을 들고 들어갔지만 굴 속에 익숙하지 않아 두려웠다. 절벽을 내려가니 작은 광장이 있고 앞쪽으로 동굴이 이어져 있었는데 천장이 낮아 10m 가량을 기어서 들어가야 했다. 손과 무릎이 아픈 것을 참으며 기어들어가 보니 넓은 광장이 나왔다. 당시 이곳에서 120명 가량의 사람들이 약 60일 정도 피난생활을 했다고 한다. 손전등을 끄고 어둠 속에 있어보니 옆 사람의 존재조차 느낄 수 없는 곳이었다. 그 속에서 잠시만이라도 4·3 당시의 삶을 떠올리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안내를 해주신 선생님은 ‘교사로서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느끼는 것은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끝을 맺었다. 해가 지는 길을 바라보며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유병준 / 남부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