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의 남자'가 또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의 뒤를 잇는 세 번째 대기록이라고 한다. 흥행의 분수령에서 대통령의 깜짝 관람이 관객 동원에 많은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일각의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일등공신은 뭐니뭐니 해도 언론의 호들갑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단순한 계산만으로도 국민 4명 중 1명이 이 영화를 봤다는 말이 된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자국민의 25%가 단시일 내에 특정 영화 한 편을 감상하는 나라가 있을까. 어떤 사람은 이런 것이 한국 영화의 힘이고 대한민국의 저력이라고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도리어 나는 그런 쏠림 현상에서 한국인의 집단성과 전체성을 읽으며 가끔은 두려움을 느낀다. 황우석 스캔들에서 봤듯이, 영웅을 기다리는 대중의 잠재의식은 너무나 크다. 그것은 화려한 조명 밖의 짙은 그늘 같은 것이다. 예컨대 정부가 균형발전을 외친다는 것은 그만큼 지역이 황폐화되었다는 반증이다. '왕의 남자'가 이곳 포천에서 상영된다면 아마도 그 1천만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던 '싹쓸이 관객'이 줄을 설 것은 자명하다. 물론 영화가 그 시대의 배설물이라는 혹독한 폄하와 그저 보고 버리면 되지 꼭 큰 의미를 두어야 하느냐는 반문도 있다. 그러나 헐리우드는 그 영화를 통해 돈도 벌고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전 세계에 학습시키는 양날의 칼로 쓰고 있다. 한류(韓流)도 요즘은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크린쿼터의 실험은 한국 영화의 또 다른 분수령이 될 것이다.문화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고작 한다는 말이 영화시장의 개방과 4천억원 지원이라는 당근뿐이니 한심하기만 하다. 1천만 관객은 되어야 영화 취급을 받는 현실에서 상영일수가 갖는 의미는 무엇보다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그 1천만이 언제 헐리우드 작품으로 줄을 설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영화계에 팽배해 있다. 쿼터제가 전적으로 1천만을 모아준 것만은 아니리라 믿지만 1천만 행렬이 영화인들 눈에는 커 보이기도 하고 그만큼 불안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스크린 쿼터와 한국영화 그리고 1천만 관객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오늘을 그려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제서야 '웰컴 투 동막골'을 보았다. '왕의 남자'가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하는 요즘 '웰컴 투 동막골'은 완전히 철지난 옛날 영화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무리 1천만 관객이라고 호들갑을 떨어도 또 다른 1천만의 영화가 나오면 잊혀지는 게 영화인 모양이다. 동막골(korea)을 지키기 위해서는 분단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죽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듯하다. 그들은 자신을 죽여야 서로를 이해하고 비로소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역설의 뜻이 거기에는 담겨 있을 것이다. 약자는 강자를 판단하기 위해, 강자는 약자를 지배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만든다. 강자는 약자를 징벌하기 위해, 약자는 살아남기 위해 법을 만든다. 그런 역사의 법칙은 한 치도 변함이 없는 듯하다. '왕의 남자' 앞에 선 긴 행렬이 다 지나간 후 그 1천만 관객이 남기고 간 그 자리까지 거닐어 보면서 '왕의 남자'를 보아야겠다.이철우(전 국회의원, 북부비전21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