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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풋풋한 봄
사회

풋풋한 봄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02/24 00:00 수정 2006.02.24 00:00

산과 들은 한겨울과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살펴보면 잎 진 나뭇가지에 물오르고 잎눈이랑 꽃눈도 굵어졌다.

“겨울이랑은 어딘가 다르지?” “아직 새순 나지 않았고 꽃 핀 나무들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봄기운은 완연해. 벌써 우수 지났잖아” “그러고 보니 본절(통도사) 매화는 피었겠네” “뭐 벌써 피었을라고” “해마다 입춘 무렵이면 꽃맹아리가 터져 핏빛으로 부풀다가 우수 무렵이면 몇 송이씩 꽃송이 벌던데”

곧 이사해 올 집 도배 장판 하기 전 버릴 것들 버리고 청소하던 차림 그대로 차를 몰고 나섰다. 천왕문 옆 본절 매화는 꽃봉오리만 팥알만큼씩 부풀었을 뿐 꽃봉오리 번 것은 아직 없었다.
“그래도, 3월 개학 전까지는 제법 피겠지?” “응, 그런데 이런 차림으로 매화 보려니 매화한테 부끄럽네. 부처님이야 다 이해하겠지만” “이사 오면 매일 뵐게요” 아내가 천왕문 나서며 사천왕께 하직 인사를 한다.

“하루 헐어 잠깐이듯 올 봄 역시 잠깐이면 왔다가겠지?” “그렇겠지. 마흔 될 때 그 막막하던 느낌이 아직 이렇게 생생한데 벌써 쉰이잖아. 예순도 일흔도 잠깐이겠지 뭐” “당신, 사월이란 시 생각나게 하는 말이네”

날 들어 햇살 쏟아지자 사흘밤낮 술렁이던 떡갈나무숲은 가슴속 깊이 갈무리해두었던 등불마다 기름 부어 가지 끝끝 연둣빛 불길 밝히고 퇴색한 마른 풀대 아래 납작 엎드렸던 쑥, 냉이, 벼룩이자리 어린 순 머리 풀어 기지개 켠다 민들레 길다랗게 목 뽑아 올려 멀리 살피고 벚나무 꽃맹아리 팝콘처럼 하얗게 가슴 부풀 듯

재깔재깔 와그르르 짝짝이 쏟아져 나오는 토요일 한낮

큰놈 버들치가 중치 버들치 좇아 짓궂게 군다 피라미 피라미끼리 참마주 참마주끼리 어울리고 장난치고 짝짓는다 (중략)

마흔에도 쉰에도 사월은 첩첩 불길 더 환하여 지상이 천상보다 향그럽다
졸시 <사월>부분

역시 봄이 좋아. 세상 어떤 게 소생하는 기쁨만할까.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漢江水)나 낙동강(洛東江) 상류(上流)와도 같은 융융(融融)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골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질거운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뜨리는 몸뚱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 더구나 서양에서 건네온 배나무의 어떤 것들은, 머리나 가슴팩뿐만이 아니라 배와 허리와 다리 발ㅅ굼치까지도 이쁜 꽃숭어리들을 달었다.

맵새, 참새, 때까치, 꾀꼬리, 꾀꼬리새끼들이 조석(朝夕)으로 이 많은 기쁨을 대신 읊조리고, 수십만(數十萬) 마리의 꿀벌들이 왼종일 북치고 소고치고 마짓굿 올리는 소리를 하고, 그래도 모자라는 놈은 더러 그 속에 묻혀 자기도 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當然)한 일이다.

우리가 이것을 사랑할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무쳐서 누워 있는 못물과 같이 저 아래 저것들을 비취고 누워서, 때로 가냘프게도 떨어져 내리는 저 어린것들의 꽃잎사귀들을 우리 몸 우에 받어라도 볼 것인가. 아니면 머언 산(山)들과 나란히 마조서서, 이것들의 아침의 유두분면(油頭粉面)과, 한낮의 춤과, 황혼의 어둠 속에 이것들이 자자들어 돌아오는 - 아스라한 침잠이나 지킬 것인가. (하략)
서정주의 <상리과원> 일부

“너무 이쁘지?” “젊다는 것 말고 이쁜 것 없는데?” “젊음보다 더 이쁜 것 어디 있어. 천하없는 미인도 늙어 이쁘진 않잖아” “하하, 그렇긴 그래. 하지만 홑겹의 아름다움이야. 작품 사진 보면 열 일곱 꽃봉오리 같은 소녀 찍은 것은 잘 없잖아. 자글자글 주름진 노파 사진은 있어도. 겹겹이 아름다움 감춰둔 얼굴은 나이 들어서나 가능하기 때문일 거야. 당신도 그렇게 늙어 봐”

흘겨보는 아내의 얼굴이 풋풋한 봄이다.

문학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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