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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소리 멈춘 소리꾼, 이유락 옹..
사회

소리 멈춘 소리꾼, 이유락 옹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03/10 00:00 수정 2006.03.10 00:00
고달픈 인생살이 소리로 '승화'

지난달 27일 새벽 양산의 한 소리꾼이 세상을 하직했다.<본지 122호, 2006년 3월 3일자 보도〉

우리시 웅상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웅상농청장원놀이(경남도 무형문화재 제23호) 기능보유자(논매기노래) 이유락(李有洛ㆍ사진)옹이 향년 86세를 일기로 이생의 삶을 다한 것이다. 고인은 1921년 음력 1월 13일 웅상읍 명곡리 512번지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생활이 곤궁했던 고인은 월사금(수업료) 50전(쌀 4~5되 값)을 낼 돈이 없어 학교에 입학하는 또래들의 뒷모습을 보며 슬픔의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런데다 12살에 어머니마저 여의어 한 해 쌀 30되의 새경을 받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시작으로 힘겹고 고달픈 소년시절을 보내야 했다.

머슴살이를 하면서도 배워야겠다는 꿈을 접지 못하고 웅상초등학교 야학에 등록을 했지만, 남의 집 살이를 하는 처지라 학교 가는 날보다는 학교 못 가는 날이 오히려 더 많았다.  그래도 그 때 그 야학에서의 배움은 소년 유락이 인생에 대해 눈을 뜨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은 나침판이었다.

나이 스무 셋이 되던 1943년, 일제 압제하의 청년 이유락은 일본 북해도 석탄광산에 징용으로 끌려가 말로 다 못할 고초를 겪어야 했다.  다행이 조국 광복을 맞은 1945년 고국의 고향 땅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난과 배고픔이었다.

하지만 고인은 타고난 소리꾼이었다. 고달픈 인생살이를 소리로 풀어온 고인에게 있어서 인생의 고난과 역경은 이녁의 소리를 승화시키는 값진 자양분이었다.

고인의 이종 아우이기도 한 천성산문학회 박극수 회장은 "고인은 한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소리꾼이었는데 산에 나무하러간 고인이 산에서 노래를 부르면 그 소리를 듣는 온 마을사람들이 눈물을 지었다"며 고인을 회상한다.

웅상지역에는 고인의 소리를 두고 사람들뿐만 아니라 산천의 초목을 떨게 하고, 날짐승과 들짐승조차도 숨을 멈추게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떠돌기도 한다. 

고인은 평소 "기교나 겉멋이 아닌, 가슴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소리, 애간장을 끊는 소리를 낼 수 있는 참 소리꾼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늘 안타까워하며 웅상농청장원놀이의 기능을 계승할 후진 양성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기에 고인이 지키고 있던 웅상농청장원놀이 '논매기놀이'의 빈 자리가 더욱 크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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