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에는 폭압이 없다.
손가락 다섯으로 결정하는 세상.
세상의 넓이.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고 그 순서에 굴복하고 가위바위보로 계단을 오르고 그 높이에 굴복하고 , 가위바위보로 술래를 정하고, 그 역할에 굴복하고. 그 굴복에는 모욕과 수치가 없다. 권위도 억압도 없는 가위바위보여.
이 봄날의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아쉬움과 탄성이 엇갈리는 가위바위보. 어른이 되면 좀처럼 가위바위보를 하지 않을 테지. 어른들이여, 우리도 가끔은 곤란한 일을 가위바위보로 결정해 보자. 그 결정이 아쉽지만 기꺼이 한번 따라보자. 오늘, 가위바위보 한번 해 보시면 어떨지? 난초와 가위바위보가 오버랩 되는 점심시간, 나는 김 선생님에게서 나태주의 난초를 읽는다.
알으켜 주지 않고
귀띔해 주지 않아도
난초는
어디로 이파리를 뻗어야 하고
어떻게 꽃을 피워야 좋은지를
안다
아무렇게나 이파리를 뻗어도
멋스럽고
아무렇게나 꽃을 피워도
어여쁜 난초
그는 이제 스스로
법이요 길이다.
나태주, <난초> 전문
"아무렇게나 이파리를 뻗어도/ 멋스럽고 /아무렇게나 꽃을 피워도 /어여쁜 난초"는 이순(耳順)을 지나고 종심(從心)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세월만큼 향기를 가진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배정희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