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도시들에는 그 도시가 자랑하는 공원이 있다. 이들 도시 속의 공원들은 자칫 삭막한 생활을 하게 마련인 도시민들에게 맑은 공기와 편안한 쉼터를 제공함으로써 도시의 산소역할을 하고 있다. 런던의 하이드파크, 뉴욕의 센트럴파크, 밴쿠버의 스탠리파크, 베를린의 티어가르덴, 도쿄의 우에노공원, 북경의 북해공원 등이 저마다의 색깔과 본새를 지니고 있는 도시의 공원들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은 한말 원각사터에 개설한 파고다공원이며, 그 뒤 남산도 시민공원으로 개발되어 한양공원이라 불렸다. 당시 공원표지로 세웠던 <漢陽公園>이라는 고종 친필의 석비(石碑)가 지금도 통일연수원 옆에 보존되어 있다. 그 밖에도 서울의 사직공원, 부산의 용두산공원, 대구의 달성공원 등이 일찍부터 개발된 공원이다. 그러다 1960년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쳐 도시규모가 확대되고, 도시인구가 증가하는 한편, 생활의 근대화, 국민소득의 향상 등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공원의 필요성이 더 요구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공원의 양과 질에 있어서도 급속한 증가와 변화를 가져왔는데, 수도권의 어린이대공원·용인민속촌·서울대공원·올림픽공원을 비롯한 부산·대구·인천·광주 등의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방 중소도시에도 시민공원이 속속 생겨났다. ‘춘추공원’의 어제와 오늘
그렇다면 우리 양산에는 양산이라는 도시를 대표할만한 공원으로 무엇이 있을까?잘 알다시피 우리 양산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쉽게 찾기 어려운 천혜의 자연경관과 기기묘묘한 비경들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통도사와 내원사 등 전통사찰은 이미 특정종교의 영역을 뛰어넘어 뭇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관광지가 되었고, 천성산, 내원사계곡, 홍룡폭포, 대운산자연휴양림, 오봉산임경대, 배내골, 천태산 등 이른바 양산팔경으로 불리고 있는 곳들이 하나 같이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도심의 공원을 말하라면 아무래도 춘추공원을 들어야 하겠다. 춘추공원은 양산시 중심가를 흐르는 양산천 서쪽, 교동 157-1번지에 자리 잡고 있다. 신불산이 남으로 내달아 영축산을 이루고 다시 서남으로 내려오면서 비봉산을 거쳐 마고산성에 이르러 원맥은 오봉산으로 뻗고 한 줄기는 양산읍을 향해 동남으로 비켜 백로봉(白鷺峰)에 다다른 곳이 곧 춘추공원이다. 일제 때 일본인들은 이곳을 ‘도산원(挑山園)’이라 부르기도 했다는데. <면세개람(面勢槪覽)>(1936)에 ‘봄에는 벚꽃과 복숭아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며, 가을에는 단풍이 절경이고, 겨울은 설경을 볼 수 있는 공원으로 500년이 넘는 포구나무가 오랜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광복 후 1949년 5월 양산의 애향단체인 춘추계에서 공원 이름을 춘추원으로 고쳐 부르다가 지금은 춘추원과 춘추공원이 두루 쓰이고 있다. 현재 공원 들머리에 터를 잡고 있는 장충단의 삼조의열비는 본디 양산읍내에 모셔져 있었으나, 이곳이 춘추원으로 불리고 난 뒤 이 자리로 옮겨져 왔다. 입구에 장충단(奬忠檀), 오른쪽에 삼조의열(三朝義烈), 왼쪽은 만년춘추(萬年春秋)란 석각기둥을 세워놓았다. 삼조의열단(三朝義烈壇)에서는 신라 만고충신 박제상 삽량주간, 고려 김원현 장군, 조선 조영규 양산군수 등, 일찍이 이 고장에서 살다간 충신들의 고귀한 충렬 정신을 받들고 이를 널리 후세에 전하기 위해 해마다 제사를 올리고 있다. 장충단 위 백로봉에는 6.25 전몰군경의 충혼탑이 있고, 장충단 뜰아래에는 이원수 노래비가, 그 아래에는 3.1 독립투사 윤현진의 비와 신라 김서현 장군비가 있다. 공원 서편에는 국궁장인 춘추정(春秋亭)이 있었으나 지금은 궁터로 쓰이지 않고 있다.취재를 위해 도움말과 관련자료를 제공해주신 시 종합민원국 산림공원과 공원조성담당 류명열 계장님과 박종화·정현민 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진_진보현 기자 / hyun00bl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