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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요한 세바스찬 바흐
사회

요한 세바스찬 바흐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04/07 00:00 수정 2006.04.07 00:00
서양 음악을 탄생시킨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바로크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고전시대의 새로운 막을 올린 위대한 음악가이다.  바흐는 서양음악사에서 가장 큰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는데 바로 바흐에 의해서 서양음악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지구상에 모든 음악이 소멸한다고 해도 바흐의 평균율 클라이버곡집 2권만 있으면 사라졌던 모든 음악을 재생할 수 있다고 하니 그가 왜 음악의 아버지인지는 새삼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바흐의 음악은 정교한 수학에 의해서 이루어져 있으며, 그의 악보 하나 하나를 수치로 다 표현해낼 수 있다고 한다.

바흐의 가문은 대대로 음악가 집안으로 명성을 날렸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게 된 바흐는 성당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는 큰형 요한 크리스토퍼의 집에서 지냈는데 크리스토퍼는 당대의 유명한 작곡가인 파헬벨의 제자였기도 하였다.

특히 귀한 악보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바흐에게만은 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바흐는 늦은 저녁 형 몰래 달빛아래에서 악보를 베껴 쓰곤 하였다고 한다.

특히 그는 비발디를 무척 존경하여 그의 악보를 교본으로 삼아 공부하였고 비발디의 음악 중 일부를 발췌하여 자신이 새로 편곡하여 작품을 내기도 했다.

바흐는 만년에는 눈이 멀어서 죽게 되는데 그 이유는 어릴 때부터 과도한 음악공부로 인하여 실명 되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바흐는 사촌누이와 결혼하여 8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녀가 죽은 후 1년 뒤에 안나 막달레나와 재혼하여 12명의 아이를 낳아 총 20명의 자녀를 두었다. 막달레나와의 재혼으로 인해 바흐는 더욱 더 음악에 전념할 수 있었으며 막달레나 역시 바흐와 함께 음악사에 중요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바흐의 전체적인 생은 크게 4가지로 분류한다. 청년시절-바이마르-괴테-라이프찌히 시절로 나누어지는데 그의 가장 음악적 유산을 많이 남긴 때가 괴테 시절이며, 창작활동이 가장 활발한 때는 라이프찌히 시절이다.

바흐가 서양음악사에 미친 영향을 새삼 이야기 할 필요는 없지만 고전 음악을 듣는 이에게는 바흐의 생애와 그의 음악적 유산에 대해서는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번 호를 시작으로 몇주에 걸쳐서 바흐의 생애와 음악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조태훈(소르) / 다음 카페 ‘클래식음악감상실’(http://cafe.daum.net/classicmusic)주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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