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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자율과 자유
사회

자율과 자유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04/14 00:00 수정 2006.04.14 00:00

올해 들어 학교에서 맡은 일이 학생 생활지도라 거의 매일 아침 교문에서 등교하는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두발 지도, 복장 지도, 지각 지도 등 아이들이 반길 일은 아니지만 규범을 지키고 단정한 용의복장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관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지도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거부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머리가 너무 긴 아이를 불러 세워 머리를  깎으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이제껏 한 번도 이런 지적을 받은 적이 없고 머리가 긴 다른 아이들도 있는데 나만 왜 지적하느냐고 한다. 학교 생활규정이니 지켜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런 규정이 있었느냐고 반문하기까지 한다.

또 어떤 아이들은 머리 긴 것 때문에 야단을 듣는 일을 아침마다 되풀이하면서 교사와 아이들 사이의 갈등은 심화되고 관계는 악화된다는 생각을 했다. 수업을 하다 말고 머리가 너무 길어 까치집을 지은 것 같은 아이가 있어 물었더니, “두발 자유화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라고 볼멘소리로 대거리를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두발 자유화인지 두발 자율화인지 어느 것이냐고 물었더니 ‘두발 자율화’라고 다시 대답을 한다. 도대체 자유와 자율은 어떻게 다른 걸까? 답답한 마음에 사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았다.

<자유 ①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함. 또는 그런 상태. ②법률의 범위 안에서 남에게 구속되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행위.>, <자율  ①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는 일. 또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여 절제하는 일. ②자신의 욕망이나 남의 명령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객관적인 도덕 법칙을 세워 이에 따르는 일.>

학교에서 두발 지도와 관련한 문제가 일어나자, 교육부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여러 차례 일선학교에 ‘두발 자율화’를 권고하였음에도 일선학교에서는 ‘자율’을 ‘자의적 통제’로 해석해서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런 지적은 당연하다. 군사독재 문화의 잔영으로 남아 있는 통제적인 지도 방식은 분명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육의 구체적 현장에 있는 교사와 학생들에게는 이 문제로 엄청난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사회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 지나가는 학생의 긴 머리를 보고 학교를 향해 ‘학교에서 왜 두발지도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온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걱정이다.

자유와 자율의 기본적 의미가 자신의 의지대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누가 두발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가 말이다.

교육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사회의 ‘합의된 규범’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유병준 교사 (남부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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