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던 에리히 프롬의 ≪소유와 존재≫를 책이 나달나달해지도록 읽었습니다. 선생님 시집 ≪사랑은 감출수록 넘쳐흘러라≫도 가슴에 품고 다니며 외우도록 읽었습니다"여러 해 전에 썼던 주례사를 찾아보고 주례사에 관한 책을 들춰보았다. 내 결혼 생활도 돌아보며 주례사를 쓰기 위해 며칠을 끙끙거렸다.
두 사람이 만나 이렇게 맺음에 이른 것은 어떤 초월적인 힘과 뜻도 있었고 또 서로 상대방이 좋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연애와 달리 생활이라 눈에 발렸던 감정의 찌짐이나 귀에 박혔던 떡볶이는 이내 걷혀지고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오히려 '너'의 장점이나 미덕은 보이지 않고 단점이나 결함만 더 크게 확대되어 보일 것입니다.하지만 결혼생활이란 이런 단점과 결함까지를 사랑하며 그것들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이란 상대의 장점만 발견하고 그 장점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과 결핍을 이해하고 보완하며 거기에 헌신하는 데서 오는 보람이요 즐거움인 것이 오히려 더 큰 것일 수 있습니다.상대의 단점과 결함을 보고 틀렸다고 하지 마십시오. '너'와 '나'는 서로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입니다. 부모 자식 사이, 절친한 친구 사이, 심지어 부부 사이라도 결코 메울 수 없는 '다름'에서 오는 거리는 있게 마련입니다. 그 다른 것을 축복과 은총으로 받아들이고 서로 사랑하십시오.지금까지 두 사람은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어른으로서 받는 사랑보다 나누는 사랑, 베푸는 사랑이 더 많아야 합니다. 결혼과 동시에 부모 형제 친지가 두 배로 늘어납니다. 그들에게 이제 둘은 한 가정을 이룬 어른이면서 자식이고 형제자매가 되어 받으려 하기보다 베풀어 보십시오. 그러다보면 바로 주고받는 거래처럼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언젠가 베푼 것은 베푼 대로 돌아옵니다. 피가 섞인 사이는 잘하면 두 배로 좋고 잘못해도 샘솟는 사랑으로 잘못을 금세 씻어버리지만 새로 들어오는 신랑 신부에게는 피가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해야 제 자리이고 못하면 두 배로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일가친척과 친지들,, 특히 부모와 형제자매들은 더 크고 따뜻한 사랑으로 두 사람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제 결혼생활의 지침이 되었던 시 한 편 읽겠습니다.
이불 호청을 꿰매면서 / 속옷 빨래를 하면서 / 나는 부끄러움의 가슴을 친다. //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 설거지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 뚜껑까지 /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 나는 그저 밥 달라 물 달라 옷 달라 시켰었다. // (중략) //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 이불홑청을 꿰매면서 /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박노해의 <이불홑청을 꿰매면서> 부분
집사람더러 한 번 읽어보라 했더니 맘에 들어 하지 않는다. 가슴에 쏙 들어오는 한두 마디가 필요한데 그런 것이 없단다. 내가 평소에 말만 번드르르 했던 모양이다. 아픈 각성의 바늘로 나부터 찌를 일이다.문학철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