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대숲의 소리
사회

대숲의 소리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04/28 00:00 수정 2006.04.28 00:00

소리들이 있다. 강물 소리, 바람 소리, 총 소리, 울음소리, 노래 소리, 양심의 소리, 비난의 소리, 침묵의 소리…… 세상의 소리들은 의도이고 표현이다.

소리는 존재의 부각이고, 존재 자체이다. 소리를 인정하는 것은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존재의 소리들에 귀를 기울인다. 귀만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눈을, 피부를, 마음을, 전부를 기울인다. 그렇다하더라도 가끔 우리의 소리는 서로 어긋나서 쇳소리를 내기도 한다.

사람의 소리는 언어라는 추상적 기호를 따라가는 것이지만 그것은 기호라고만 말하기에는 너무나 다면적이고 활동적인 구조이다.

의도와 표현 사이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언어는 오히려 기호의 기호, 암호의 수준이다. 상대 소리의 암호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우리는 막막해진다. 그런데 시는 전체적으로 암호와 압축이 함께 걸려 있으니 이중의 괴로움을 준다. 여기 소리에 대한 시, 소리에 대한 암호 하나를 소개한다.
 
뉘 집 사랑채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는데/ 거기에는 스님도 한 분, 명색으로 치자면 시인도 몇 / 그렇게 둘러둘러 차를 마시는데/ 열어놓은 뒷문으로 대밭이 어른거리며/차상에 슬쩍슬쩍 손을 얹어 대는데//

대밭에는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최고야/ 아니지 바람이 몰려와/ 댓잎 부딪히는 소리가 일품이지/ 아니지 소리도 없이 빠져나가는 댓잎의 사이/ 텅 빈 바람길이 좋은 거지//

그러는 사이/ 대밭에서 후둑였던 참새 떼/ 나는 그 중의 제일 힘찬 소리 하나를 골라/ 그의 몸무게를 재어보고는/ 내려 주었다 
노창재, <대숲의 소리> 전문
 
이 시의 화자는 누군가의 집 사랑채에 앉아 사람들과 창 밖에 보이는 대밭의 소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대숲에 대한 사람들의 소리(반응)를 구조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핵심은 3연에 있다.

화자는 대화에 집중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에서 놓아주려는 참새에 대한 상념으로 가득 차 있는 듯이 보인다.

대밭에는 어울리지 않는 참새, 그 중에서도 큰 소리를 내는 참새 한 마리를 내려주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있다. 이것은 결별의 소리이다. 화자와 참새의 결별 이유는 참새의 힘찬 소리와 몸무게가 맞지 않다는 것이지만 그 소리와 몸무게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독자의 몫이다. 그것까지 말하면 시가 되기 어려울 테니.

그러나 소리를 내는 대숲을 존재라 생각하고 읽어보자. 존재의 소리들, 존재하는 것들은 제각기 빗물 떨어지는 소리, 바람이 몰려와 댓잎 부딪히는 소리, 소리도 없이 빠져나가는 댓잎 사이의 텅 빈 바람길 같은 침묵의 소리로 존재하고 있다.

그 중에서 화자는  참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존재이다. 화자는 참새에 몰두하고 있었으니, 누구보다도 참새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을 게다.

이 시는 참새로 나타나는 한 존재를 놓아주는 것이기 보다, 결국 자신을 참새로부터 내려놓음을 보여준다. 이미 떠나고 없는 참새(한 존재)를 화자는 오래 동안 놓지 못하다가 드디어 마음에서 내려놓은 것이다.

또 어쩌면 이 시의 '대숲'은 세계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 대숲 속의 참새 떼에 불과한 존재들. 짹짹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끝없이 입을 벌려대는 참새 떼 말이다.

한 마리 참새인 화자는 유독 큰 목소리의 참새가 있어, 그 참새의 목소리가 좋아서, 무척 사랑했으리라. 그러나 사랑한 참새의 목소리와 몸무게를 재어보고, 참새 목소리의 울림과 그 깊이를 재어보고는 가슴에 금이 가 보내주었다고 해석한들 어떻겠는가?

시는 어차피 암호인 것을. 그런 의미에서 시는 읽는 이보다 쓰는 이가 즐겁다. 아, 읽기의 괴로움이여!

배정희 / 시인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