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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모란은 피고
사회

모란은 피고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05/04 00:00 수정 2006.05.04 00:00

교정 화단에 모란이 핀다.

젖을 듯 말 듯 내리는 봄비 속에 피어 더 진한 자주색 모란 꽃봉오리가 푸른 잎사귀 위에 부풀어 올라 있다. 몇 송이는 꽃봉오리가 벌어져 여자아이 주먹만 하다. 벌어진 꽃잎을 보니 자주색 고급스런 광택이 나는 질긴 한지를 약간 구긴 것 같아 손으로 좀 만져도 꽃잎이 그리 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선생님 지금 뭐 하세요. 조금 전까지 비 오는데도 사진 찍는 것 같더니”
“모란을 좀 연구해 보려고요”
“그렇게 꽃봉오리 벌리고 살펴봐서 알게 될 내용이라면 네이버 검색이 더 나아요”
“검색해서 아는 지식이랑 이렇게 손으로 직접 살펴보는 지식은 같지 않죠”
“그렇다고 아이들이 다 손으로 만져 모란 살펴보면 학교 교정에 모란 남아날까요?”
“아이쿠, 무서워라. 맞습니다. 항복”
“호호, 그래서 뭘 알아냈죠?”

모란은 다 피면 지름이 15 센티미터 이상이 되는 큰 꽃이다. 꽃받침 조각이 다섯 개, 그리고 크기가 각각 다르고 모양도 다른 꽃잎이 여덟 장 이상 불규칙한 모습으로 돋아 꽃술을 둘러싸고 있다. 그 중 셋은 크고 나머지 대여섯 개의 꽃잎은 상대적으로 작다. 자주색 광택이 나는 질긴 한지를 기품 있게 약간 구겨놓은 듯한 꽃잎들로 둘러싸여 있는 꽃술은 털이 있는 몇 개의 키 큰 암술과 그 주위에 키 작은 노란 수술이 빽빽하게 돋아 둥근 채반을 엎어 놓은 것 같다.

“검색해서 찾은 정보네요. 모란을 묘사한 부분은 검색내용보다 조금 더 실감나지만”
때마침 지나가던 정 선생이 한 마디 거든다.

“사진은 햇살 환한 날 찍어야 색채감이나 입체감이 살아나요. 오늘처럼 이렇게 비 오는 날에는 작품 될 사진 안 찍혀요”
“그런데 모란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게요?”
“모란이 귀화식물이었나?”하는 내 대답에,

“하하, 신라 선덕여왕 때. 종자와 함께 보낸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꽃에 향기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며 ‘이는 나에게 배우자가 없음을 조롱한 것’이라 했다는 여왕의 지혜에 대한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하잖아요” 정 선생이 만물박사답게 앞질러 다 말해 버린다.

“≪동양화 읽는 법≫이라는 책에 보면 당시 중국에는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에 수명을 한정하는 의미를 지닌 나비(80세)를 같이 그리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하고 또, 그때 중국에는 향기가 좋은 변종 모란도 당연히 있어 시인들이 그 향기를 읊었다고 하던데요. 일연이 선덕여왕을 미화하기 위해 독화법을 무시했다는 말과 함께”
“그런데 우리나라로 넘어온 모란은 다 냄새가 없어 벌과 나비가 가까이 하지 않잖아요. 시인들이 읊었다는 향기는 모란의 화려한 모습에서 연상된 공감각의 향이란 생각이 드네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전문

이 시의 끝은 처음을 반복하면서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모란이 지고 났을 때의 슬픔과 고통을 예상하면서도 모란에 대한 기다림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간절한 소망과 그 소망 달성의 기쁨, 그리고 기쁨의 소멸과 좌절, 그 후 다시 갖게 되는 상실의 아픔으로부터 생겨난 더욱 간절한 소망, 이런 과정 자체가 바로 삶이라는 깨달음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의 태어남과 죽음의 터널이 곧 이런 것 아닐까.

나는 모란도 좋아하고 작약도 좋아한다. 하지만 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있어 내 삶 어디에나 자주색 찬란한 슬픔으로 모란은 늘 피어 있다.

문학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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