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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게
사회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게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05/12 00:00 수정 2006.05.12 00:00

― 할매, 다음 주에 내 가께.
― 그 전에 안 죽겠나.
― 죽기는 와 죽노.

어머니의 어머니. 외할머니. 팔십 여섯의 우리 할매. 칠 남매 맏이인 내 어머니의 맏이로 태어난 나는 외가의 사랑을 무척이나 많이 받았다. 특히 당신의. 할매는 나와 통화를 끝낸 뒤 전화기를 보며 “야아가 어디 요기서 쏙 나오노”라고 하시며 온 방이 환해지도록 웃더라고 이모가 전해주었다.

가끔씩 정신을 놓으시는 할매. 할매의 기억 속에 나는 언제나 환하게 남아있는가 보다. 그것은 오로지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 때문임을 어찌 모르겠는가마는 내 맘 속에 외할머니는 해가 갈수록 안타깝고 아프게 남는다.

드넓은 당신의 마음에 비해 좁아터진 내 마음은 한 번도 당신에게 넘쳐난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에서 당신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을 때 뼈아픈 후회가 내게 남으리.

자궁 적출 수술을 하신 날의 밤/ 통증으로 잠 못 이루는 당신 곁에 앉아/ 서른셋에 죽은 한 사내의 이적을 읽습니다

눈앞에서 자식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본/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여/ 그대 살아갈 생애의 무게는/ 이 우주의 무게와 맞먹을 것입니다

눈앞에서 어머니가 죽어 가는 모습을 본/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여/ 그대 살아갈 생애의 무게는/ 이 우주 무게의 일부를 이룰 것입니다

34년 전 난세포 하나로 저를 잉태하고/ 오늘 자궁을 들어내신 나의 어머니/ 한쪽 가슴 이미 없으시니/ 그대 여성으로서의 몫은 다하신 것이지요

그날 1960년 4월 18일/ 한나절 꼬박 통증으로 눈물 흘리며/ 생명이라는 우주를 이 우주에 내보내신/ 당신을 다시 한 번 불러봅니다/ “어머니―”라고

―이승하,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게> 전문

어린이날. 날짜야 상징적인 것이지만, 그래도 어린이날에 어린이는 더 즐겁다. 어린이날에 더 슬픈 어린이는 순전히 부모의 책임이다.

어버이날. 날짜야 상징적인 것이지만 어버이날에 어버이는 더 귀하다. 어버이날에 더 쓸쓸한 어버이는 순전히 자식의 책임이다.

세상이 변하고 인심이 변하고 있다고들 하지만 그 변화를 감지하고 변화의 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우리 인간의 힘이다.

나는 사랑의 힘을 믿는다. 모든 것 다 내어주고 가벼워진 어머니의 무게는 다시 그 딸들에게 아들들에게 유전되어 좀 더 따뜻한 세상 만들 것이라는 것을.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여, 당신의 사랑이 자식을 키우고 자식의 자식을 살찌우고 자식의 민족을 튼튼히 하는 것임을 말한다는 것이 쑥스럽습니다.

당신 생애의 무게가 이 우주의 무게와 맞먹는 것임을 세상의 자식들 모두 알게 될 날이 오겠지요.

배정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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