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덕한 웃음으로 먼저 인사를 건네는 마음씨 좋은 아줌마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입장 바꾸기’의 미덕을 호소하며 매점 아줌마에 대한 변론을 마무리 짓는다. 사이라는 것, 관계라는 것, 이해 안 하려고 들면 어찌 메워질 수 있겠는가. 멀고 가까움을 떠나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그 사일 메워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건 결코 거창한 휴머니즘이 아니다.통일호 열차 안의 옆자리/ 신문을 읽고 있는 신사분의 발에/ 수압을 견디지 못한 말이 몇 번이고 뛰쳐나올 뻔했다/ 옆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미워해야 한다는 것만큼 먹먹한 일도 없을 것이다/ 진실은 포장되지 않은 상태로 온다고 하지만/ 진실도 진실 나름/ 그러나 이 표정 굳은 생각은 왜관을 지나면서/ 달라졌다 내 코가 발꼬랑내에 그렇게/ 절어가는 것도 신기했다/ 세상을 감각 끝에서 맡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상황 쪽으로 풀어놓는 일/ 그걸 중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마는/ 중독도 중독 나름/ 나는 그 신사의 발냄새가 친숙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세상과 내 코 사이에 향술 뿌려놓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껴안으려기보다는 떨어져 있으려는/ 내 자세가 문제였을 것이다/ 발냄새처럼은 아닐지라도/ 서로가 뿜어내는 흐뭇하고 끈적한 기운 같은 게/ 사일 메워야 한다는 실감/ 이번에는 코끝에서가 아니라/ 살갗 사이에서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구두를 벗기 시작했다//
-손진은, <사이에 대하여> 전문 누구나 한번쯤 해 보았을 경험을 쓴 시다. 버스를 타면 ‘신발을 벗지 마시오’라고 써 붙여 놓은 건 이러한 일 때문이겠지. 밀폐된 공간에서의 발 냄새!(지독한 고문, 분노, 적개심 등등 오만가지 감정의 비빔밥) 그러면서도 좀 더 참아보자고, 급기야 후각이 마비될 때까지의 은근과 끈기. 그러나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신발 주인. "수압을 견디지 못하는 말"이라는 표현은 참 적절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껴안으려기보다는 떨어져 있으려는/ 내 자세가 문제였을 것이다"라고. 참으로 거룩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나는 손 시인을 좀 알기 때문에 거룩하다는 말을 주저 없이 쓴다. 그는 정말 이와 같은 심성을 가진 시인이다. 같이 구두를 벗지 않으면, 내가 한 꺼풀 벗지 않으면, 우리 사이가 어찌 가까워 지리요. "서로가 뿜어내는 흐뭇하고 끈적한 기운 같은 게/ 사일 메워야 한다는 실감"을 주는 시이다.배정희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