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의 <남(南)으로 창을 내겠소> 전문
자정 넘기며 어탕국수를 벌레 먹은 자국이 숭숭한 배춧잎에 쌈 싸 먹는데 나이 쉰에 대학원 등록한 신공이 농막에 붙어 서 있는 키 큰 재래종 뽕나무에서 따왔다며 뽕잎을 한 줌 내놓는다. ‘먹어도 되는 거야’하며 상추쌈에 넣어 먹는다. 그래, 소가 먹는 건 사람도 다 먹을 수 있다더라 하며 너도나도 뽕잎을 먹어 본다.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 낡은 기와집. // 산은 자하산(紫霞山) / 봄눈 녹으면, // 느릅나무 /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구비를 // 청노루 / 맑은 눈에 // 도는 / 구름
-박목월의 <청노루> 전문녀석, 역시 많이 심심했던 모양이다. 건너편 산자락을 타닥타닥 달려 내려온다. 마주 내려가는 내 걸음도 더 가벼워진다. 도랑을 건너 녀석에게 조금 걸음을 늦추며 다가섰더니, 어라, 청노루 녀석 역시 걸음을 늦추고 있다. 녀석이 턱 밑까지 다가와 몸 비비려다말고 빤히 올려다본다. 맑은 눈 속에 흰 구름 한 조각 한가롭게 비친다. 내가 묻혔던 바깥 냄새가 다 아직 씻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에이, 이 냄새 싫어’ 녀석 눈길이 하늘로 옮아가며 눈 속에 비친 흰구름이 크게 돌아간다.그 아찔한 하늘 속으로 빨려 떨어지다 그만 눈을 떴다. 천막 틈으로 새어드는 아침햇살이 낯설다. 여기가 어딜까? 얼굴을 쓰다듬어보니 손 가득 잡히던 흰 수염이 간 곳 없다. 불어난 물소리에 섞여 이골저골 굴러 떨어지는 뻐꾸기소리는 그대로인데 다시 몸 비벼대는 청노루 녀석과 들어섰던 청운사 낡은 집이 아니다. "머 해. 나와 봐/ 우리 여기 뒤쪽 밭 사서 퇴직 후 다 함께 살자." 청노루 녀석 눈 속에 비친 하늘이 너무도 생생하여 먼저 일어나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는 정 박사 목소리가 낯설기만 하다.문학철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