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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 바이올리니스트 오주영을 만나다♪..
사회

♬ 바이올리니스트 오주영을 만나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06/23 00:00 수정 2006.06.23 00:00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연주를 하고 싶어요”

차세대 바이올리니스트로 주목받고 있는 오주영이 16일 저녁에 있을 유라시안필과의 협연에 앞서 이날 낮 본사에 들렀다. 

격식을 차리지 않은 티셔츠 차림으로 기자 앞에 앉은 그는 얼핏 보아서는 그냥 평범한 한 젊은이일 뿐이다. 하지만 이 젊은이가 바야흐로 한창 빛을 발하고 있는 바이올린계의 신성이라니…
 
“대학에서 음악교육학을 전공하신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어요. 사실 저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음악을 들었는데 태어나 보니까 집 위층에서는 작은 고모가 피아노 학원을 했고, 아래층에서는 아버지가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계셨어요”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오주영은 다섯 살 때 비로소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세계 각국에서 3천여 명이 참가한 미국 미시건주 국제 음악캠프 콩쿠르에서 초·중등부 1위를 차지함으로써 현지 음악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이 사실이 국내의 각 일간지와 방송에 보도되어 한국음악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대 마스터 클래스에 참가했던 그는 그곳에서 줄리어드 음대의 강효 교수를 만났고, 강 교수의 주선으로 미국 줄리어드 음대 예비학교에서 스칼라십(장학생)으로 공부하게 된다.

미국으로 건너간 지 1년 만인 1996년에는 젊은 연주자들의 꿈의 관문인 뉴욕 영 콘서트 아티스트 국제음악 콩쿠르에서 최연소(14세)로 현악부분 1위를 차지해 다시 한 번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 뒤 오주영이 미국 바이올리니스트계의 대모 고(故) 도로시 딜레이 교수를 만난 것은 그의 음악인생이 활짝 열리는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

“딜레이 교수님은 인정 많은 이웃집 할머니 같은 분이었어요. 바이올린을 지도하시면서도 책망하거나 꾸지람을 하지 않고 언제나 친절하게 가르쳐주셨지요. 그렇지만 음악계에 미치는 파워가 대단하셔서 제자들이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을 크게 열어주신 지도자였습니다”

하지만 동양의 한 작은 나라에서 온 어린 음악신동을 알뜰히 보살피고 이끌어주던 딜레이 교수가 2002년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어 오주영은 딜레이의 마지막 제자가 돼 버렸다.

스승의 갑작스런 죽음은 오주영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감을 안겨주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 이제는 홀로 우뚝 섰다. 그리고 지금도 문득문득 스승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자신을 추스른다.

“너는 연주자로서의 카리스마를 타고났어. 그게 바로 남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너의 가능성이야. 테크닉은 차츰 다듬어 가면 될 테니까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마음으로 연주하는 음악가, 청중들과 하나가 되는 연주자가 되도록 하여라” 

스승의 가르침대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연주로 청중과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을 이루는 연주자’가 되고자 한다는 그는 “연주를 통해 자신을 내세우기 보다는 작곡자가 어떻게 연주하기를 바라는지를 읽고 그 의도를 충실하게 드러내는 것이 좋은 연주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말한다. 

‘하이페츠를 꿈꾸는 미완의 카리스마’로 불리는 오주영-
“앞으로 음악의 각 영역을 넘나드는 멀티 플레어가 되고 싶다”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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