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쳐다만 봐도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데요. 얘들아, 웃음이 절로 나지?”초등학생 남매를 데리고 온 부부가 안으로 들어가고 나자 통도사 성보박물관 앞에 떡하니 앉아 웃음 짓고 있던 포대화상이 튀어나온 배를 더 나오게 하며 환한 웃음을 더 밝게 밝혀 웃는다.“가르쳐 줄 거면 바로 가르쳐 줘야지. 포대화상 배를 만져야 정말 복이 온다던데. 저 넉넉한 배” 화장실 다녀 온 아내가 박물관 매표소 안으로 들어서며 내 배를 보고 웃는다.“하하, 그런가? 하지만 웃으면 복이 온다잖아. 생각하기 나름이지 뭐”
“맞아, 그런 것 같아. 세상에 이렇게 넓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정원 갖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맑은 공기, 전부 너무 좋잖아. 내 공간을 이 매표소 안으로만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지만 조금만 넓혀보면 통도사가 다 내 정원인데. 정말 생각하기 나름이야”
“절밥 조금 먹더니 금세 도인됐네”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 진대 한강수(漢江水)나 낙동강(洛東江) 상류와도 같은 융융(隆隆)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굴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 웃음판이다.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트리는 몸뚱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 더구나 서양에서 건너온 배나무의 어떤 것들은, 머리나 가슴패기뿐만이 아니라 배와 허리와 다리 발꿈치에까지도 이쁜 꽃송아리들을 달았다. 멧새, 참새, 때까치, 꾀꼬리, 꾀꼬리 새끼들이 조석(朝夕)으로 이 많은 기쁨을 대신 읊조리고, 수십만 마리의 꿀벌들이 온종일 북 치고 소고 치고 맞이굿 올리는 소리를 하고, 그래도 모자라는 놈은 더러 그 속에 묻혀 자기도 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當然)한 일이다.
(중략)하여간 이 하나도 서러울 것이 없는 것들 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미물(微物) 하나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섣불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설움 같은 걸 가르치지 말 일이다. 저것들을 축복(祝福)하는 때까치의 어느 것, 비비새의 어느 것, 벌 나비의 어느 것, 또 저것들의 꽃봉오리와 꽃숭어리의 어느 것에 대체 우리가 항용 나직이 서로 주고받는 슬픔이란 것이 깃들여 있단 말인가.이것들의 초밤에의 완전귀소(完全歸巢)가 끝난 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산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 때가 되거든,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리켜 보일 일이요, 제일 오랜 종(鐘) 소리를 들일 일이다.―서정주의 <상리과원(上里果園)> 일부과수원의 흐드러진 꽃숭어리들에서 여학생들의 티 없이 맑은 웃음판을 떠올린다. 넘쳐나는 생명력과 생의 기쁨을 그늘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산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 때가 되’어도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리켜 보일 일이요, 제일 오랜 종(鐘) 소리를 들일 일’이라 한다.시험 스트레스가 출산하는 스트레스만큼이나 크다더니 시험기간이라 먹을 시간도 없고 먹고 싶지도 않다며 아들 녀석이 아침도 제대로 안 먹으면서 사흘 연달아 점심도 먹지 않았다 한다. 그런데 기말고사 열 몇 과목 중 두어 과목 망쳤다는 아들 말에 나는 역정부터 냈고 도인 다 된 것 같던 아내는 아무 말도 않더니 저녁 산책 나갔다 오며 헛구역질을 한다.욕심 거두고 생각 조금만 바꾸면 세상은 밝기만 한데 나는 아이들에게 어느 별을 가리켜 보이고 어떤 종소리 들려주고 있는가.문학철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