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5세반 유치원에 다니는 우리 집 작은 녀석 때문에 난리가 났다. 오늘 경찰청으로 견학을 가는데 늦게 오면 선생님이 놔두고 그냥 간다고 했다면서 아침 여섯 시도 되기 전에 일어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야단이다. 달콤한 잠에 빠져 있다가 녀석의 보채는 소리에 짜증이 나서 유치원 갈 시간이 아직 멀었으니 걱정하지 말고 더 자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늦으면 선생님이 기다리지 않고 그냥 간다고 했다는 말만 되풀이 하면서 엄마, 아빠 빨리 일어나 준비하라고 외친다. 절박하게까지 들리는 녀석의 외침을 애써 외면하면서 잠에 다시 빠져드는 순간 ‘으~앙’ 울어대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완전히 깨고 말았다.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왜 이러냐고 물었더니 계속해서 선생님이 늦으면 기다리지 않고 그냥 간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그래서 도대체 선생님이 몇 시까지 오겠다고 하시더냐고 캐물어도 대답 대신 빨리 가야 한다는 말만 한다. 부자 간 말이 통하지 않는 대화를 듣고 있던 아내도 답답했던지, ‘유치원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몇 시까지 오라고 시간을 왜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거야?’라고 한다. 한바탕 소동이 끝난 뒤 녀석은 평소와는 달리 스스로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옷까지 단정히 입고 앉아 유치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출근하면서 엄마, 아빠 말보다는 유치원 선생님 말씀이 절대적인 녀석을 흘깃 바라보며 부모로서는 서운한 감정이 들지만, 같은 교사로서 선생님 말씀을 저렇게 잘 듣는다는 걸 생각하니 고맙기도 하다. 요즘 학교에서 교육 주체 간 대화나 의사소통이 긴밀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일어나는 갈등과 문제들을 접하게 된다. 어떤 경우는 학교에서 하는 일을 알리기 위해 가정통신문을 보내지만 아이들이 집에 제대로 알리지 않아 문제가 생긴다. 또 어떤 경우는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하는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해결 방식이 적절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반대로 학교가 학생이나 학부모들에게 학교의 일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서 구성원 간 긴밀한 대화와 협의 부족으로 거듭 일어나는 갈등과 문제는 문제를 공익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개별적이고 사적인 문제로 취급해서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그것은 ‘학교’의 존립 자체마저 걱정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공적 문제를 사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시도는 지속 가능한 교육을 어렵게 만든다. 거기다 학교 구성원 간 서로를 믿을 수 없도록 하는 사고를 갖게 하여 교육이 흔들리게 된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사이의 신뢰 회복이 교육의 바탕이 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학교 구성원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학교 교육을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운영위원회는 이러한 노력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로써 도입된 것인 만큼 그 역할과 기능을 다하여 학교 구성원 간 신뢰를 회복하고 지속 가능한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디딤돌을 놓아주었으면 한다.유병준 교사 (남부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