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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산과 길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07/14 00:00 수정 2006.07.14 00:00

하나.

급식비리 등 작년 말 학내 부정을 폭로해 투명한 학교운영의 토대를 마련한 공을 인정받아 한국투명성기구로부터 투명사회상을 받았지만 비리 재단에 의해 파면된 서울 D여고 조연희(42.여) 선생이 11일 오후 이 학교 인근 골목길에서 윤동주의 「길」을 소재로 학생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길거리수업'을 했다.
 
잃어버렸습니다. /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 길에 나아갑니다. // (중략)//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의 「길」
 
'길'은 길이면서 삶의 길이고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다. 화자는 처음엔 자신이 무엇을 어디다 잃었는지도 몰랐지만 잃은 것을 되찾고자 나선 길에서 '돌담 저쪽에 남아 있는 나'를 확인한다. 하지만 돌담은 끝없이 이어있고 돌담을 열고 들어갈 쇠문은 굳게 닫혀 있어 아침에서 저녁까지, 저녁에서 아침까지 돌담을 더듬어도 '돌담 저쪽의 나'에게는 닿지 못해 눈물짓다 쳐다본 하늘이 부끄럽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 부끄럽다.

조 선생은 불의를 보고도 그냥 침묵만 하던 자신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풀 한 포기 없는 길을 선택해서 걸음으로써 '잃어버린 나'를 찾아 나선 것이고 그 길을 지금 걷고 있는 것이다.
둘.

저물녘 하늘이 쓰레질 끝낸 무논 빛으로 어슴푸레해질 때면 영축산(靈鷲山)은 한 마리 신령스런 거대한 독수리의 자태로 날아오른다. 그래서 영축산을 靈鷲山(영취산)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 새벽녘이면 산들이 /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댔다가는 /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 틀만 남겨놓고 먼 산 속으로 간다. // 산은 날아도 새둥지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 짐승들의 굴속에서도 / 흙 한 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봐 / 지구처럼 부동의 자세로 떠간다. /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 기분 좋게 엎대서 /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중략) //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 사람을 다스린다. // (후략)
김광섭의 「산」

 
이 시에서 산은 사람과 마주대어 있다. 서로 모양도 다르고 태도나 품격이 다른 사람들을 갖가지 모양과 형세를 지닌 산의 모습에 견준 것이다. 6연까지의 '산'은 자기와 함께 남을 배려해 주는 다정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한다. 그러나 7연에서는 울적함을 느끼기도 하고 8연에 와서는 신경질을 되게 내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적인 면으로부터 산은 '고산(高山)'이요, '명산(名山)'으로 자리 잡는다.

셋.

공자도 말했다. 어진 사람은 불의를 보고 진정으로 성낼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불의를 보고 크게 성낸 사람들이 성인으로 큰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다.

조연희 선생이 '잃어버린 나'의 한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굳게 닫힌 쇠문을 여는 데 나도 작은 힘을 보태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불의를 보고 성냄을 보인 조연희 선생을 생각하며 나의 '산과 길'을 떠올린다.

문학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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