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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빗발이 드세기로
사회

빗발이 드세기로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07/21 00:00 수정 2006.07.21 00:00

지긋지긋한 비가 내리고 있다. 인정 사정없이 계속 내리는 비가 미워서 비 이야기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며칠째 비가 계속 내리고 있으니 비를 피해 가는 것도 그리 마음이 편하지가 않을 것 같다.

눅눅하고 습한 기운들이 집안 구석구석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온통 점령하였다. 수위에 따라 긴장의 고도도 같이 움직이던 며칠이 지나고 궂은 날씨에도 복구 작업이 한창이라는 소식을 듣고 있자니 안타까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낭만적 감상과 철학적 명상을 불러일으키는 물은 올해의 장마철과는 거리가 멀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한미 FTA협정 등 여러 가지 사안들로 어수선한 시점에 천재지변까지 겹치니 참으로 난국이다. 난국에는 지혜와 용기와 사랑이 필요하다. 나의 평안을 조금 내어 줄 수 있는 마음 말이다.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 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 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개가 엉성하게 받치고 선
 네 약한 푸른 살을 찢게 될까 두렵구나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들게 한다면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두겠다
 몸이 젖으면 어떠랴
 만물이 눅눅한 슬픔에 녹고있는데
 빗발이 드세기로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젖은 어깨에 손을 얹어
 따뜻한 체온이 되어줄 수도 있는
 이 비 오는 날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나희덕, 「비오는 날에」전문

 
이 시는 찢어지기 쉬운 비닐 우산 같은 이웃에게 단단한 우산을 가진 화자가 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그것은 결국 이웃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을 고백하는 시이다.

화자는 자신의 단단함을 과시하지 않더라도, 단단함 그 자체만으로도 연약한 이웃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들게 한다면 /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두겠다 / 몸이 젖으면 어떠랴"라며 자신의 단단함 때문에 약한 이웃이 상처 입을 것을 염려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자본의 논리가 판을 치는 이 세상에 성스럽기조차 하다.

 "빗발이 드세기로 /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그 사랑이 가득한 여름이 될 것이다.
 
 우리는 빗속을 함께 걸어가고 있으므로.  

배정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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