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 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 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개가 엉성하게 받치고 선
네 약한 푸른 살을 찢게 될까 두렵구나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들게 한다면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두겠다
몸이 젖으면 어떠랴
만물이 눅눅한 슬픔에 녹고있는데
빗발이 드세기로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젖은 어깨에 손을 얹어
따뜻한 체온이 되어줄 수도 있는
이 비 오는 날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나희덕, 「비오는 날에」전문
이 시는 찢어지기 쉬운 비닐 우산 같은 이웃에게 단단한 우산을 가진 화자가 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그것은 결국 이웃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을 고백하는 시이다. 화자는 자신의 단단함을 과시하지 않더라도, 단단함 그 자체만으로도 연약한 이웃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들게 한다면 /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두겠다 / 몸이 젖으면 어떠랴"라며 자신의 단단함 때문에 약한 이웃이 상처 입을 것을 염려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자본의 논리가 판을 치는 이 세상에 성스럽기조차 하다. "빗발이 드세기로 /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그 사랑이 가득한 여름이 될 것이다.
우리는 빗속을 함께 걸어가고 있으므로. 배정희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