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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빗속의 호박꽃 앞에서
사회

빗속의 호박꽃 앞에서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07/28 00:00 수정 2006.07.28 00:00

아내가 백중 천도제 접수를 하러 통도사 화엄전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길 반 높이의 화엄전 축대 위 처마 아래서 장하게 쏟아지는 비를 긋고 있었다. 장대 같은 빗줄기가 연출해내는 비안개(雨煙)로 마당 건너 보이는 영산전이 금세 파스텔 톤으로 흐려진다. 그런데 영산전이 저리 높았던가.

내게 영축산이 가장 높아 보였던 곳은 안양암 뒤 고갯마루에서 뚝 떨어지듯 굽어 내리는 길 위에서였다. 큰 것을 알아보자면 나 역시 그만한 높이까지 올라가지는 않더라도 그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가 확보될 만한 높이까지는 올라서야 상대의 진실한 높이와 크기를 알아 볼 수 있는 법이다. 영산전이 붕새가 발돋움을 하며 막 날아오르려는 몸짓을 하는 것처럼 크게 솟구쳐 보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계곡 물이라 삽시간에 불어 있다. 무풍교 아래로 굼실거리며 흐르는 누런 물가에 스티로폼, 비닐, 죽은 나뭇가지, 빈병 나부랭이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이것들이 이제 내려가 낙동강 하구를 뒤덮는 쓰레기 더미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이번 폭우로 우리 사회는 얼마의 손실을 입고 얼마의 덕을 봤을까.

인명은 값으로 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인명 피해만 계산하지 않는다면 손해를 감쇄하고도 줄잡아 수십조 원 이상의 덕을 봤을 것이다. 유실된 도로, 쓸려가고 덮여버린 집이나 논밭, 댐을 뒤덮은 쓰레기 같은 엄청난 손실이 있었다지만 인력으로는 도저히 이렇게 깨끗이 온 세상을 씻어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썩어나게 하고 있던 엄청난 쓰레기를 씻어 내린 값, 그 하나만 해도 엄청날 뿐 아니라 댐을 채운 수천억 톤의 물 값을 생각하면 손실은 덕본 것에 견줄 것이 못된다.

아파트 입구 솔숲이 있는 언덕 아랫자락까지 오니 비가 숙어진다. 부지런한 이웃들이 가꾼 텃밭이 오밀조밀 싱싱한 푸른빛으로 아름답다.

조롱조롱 맺힌 풋고추도 싱그럽고 장마를 견디고 있는 상추도 풋풋하다. 긴 장마 속에 검푸른 숲을 이룬 호박덩굴 속에 호박꽃이 벌고 있다.

그동안 시인 33년 동안 / 나는 아름다움을 규정해왔다 / 그때마다 나는 서슴지 않고 / 이것은 아름다움이다 / 이것은 아름다움의 반역이다라고 규정해왔다 / 몇 개의 미학에 열중했다 / 그러나 아름다움이란 / 바로 그 미학 속에 있지 않았다 / 불을 끄지 않은 채 / 나는 잠들었다 // 아 내 지난날에 대한 공포여 / 나는 오늘부터 / 결코 아름다움을 규정하지 않을 것이다 // 규정하다니 / 규정하다니 // 아름다움을 어떻게 규정한단 말인가 / 긴 장마 때문에 / 호박넝쿨에 호박꽃이 피지 않았다 / 장마 뒤 / 너무나 늦게 호박꽃이 피어 / 그 안에 벌이 들어가 떨고 있고 / 그 밖에서 내가 떨고 있었다 // 아, 삶으로 가득 찬 호박꽃의 아름다움이여
- 고은의 「호박꽃」전문

못 생긴 여인이나 늙은 여자를 꽃에 견주어 호박꽃이라 한다. 지금까지 열중했던 미학의 범주에 호박꽃은 아름다움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선을 긋고 선 안에 들어오는 것과 선 밖의 것을 나누어 봤다. 미학 역시 하나의 선입견으로 작용했다.

장마 끝 너무나 늦게 핀 호박꽃 안에서 벌이 들어 떨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호박꽃 밖에서 떨며 그 아름다움을 보고 있다.

삶으로 가득 찬 호박꽃의 아름다움을 보며 몇 개의 미학이라는 선입견으로 그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보지 못하고 아름다움의 반역으로까지 규정했던 시적화자의 지난날이 공포로 다가온다.

나는 호박꽃의 아름다움을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는데 시인 고은이 저러했나 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어느 높이에서 고은이라는 산을 올려다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움으로 호박꽃 앞에서 뺨을 감쌌다.

문학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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