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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반도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08/18 00:00 수정 2006.08.18 00:00

바둑이나 장기를 두다 보면 경우에 따라 대마를 사석으로 쓰기도 하고, 차(車)나 포(包) 같은 중요한 패를 미끼로 던지기도 한다.

 

한반도는 미국에게 얼마의 비중으로 비춰질까. 우리에게 한반도는 모든 삶이 다 걸려 있는 것이지만 미국에게 있어서 한반도는 지구 경영의 작은 한 부분일 뿐이어서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사석으로 쉽게 버릴 수도 있는 장기판의 졸(卒) 가운데 하나인 것은 아닐까.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중략)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박봉우의 「휴전선(休戰線)」가운데

 

휴전선이라는 구체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사물을 소재로 남과 북의 적대 관계 지속은 필연코 전쟁을 불러들일 것이라고 예고하며 화해의 필연성을 절절한 어조로 휴전 후에 노래한 시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휴전선을 몸 가운데 심어두고 두 세대에 이르는 그 긴 기간 동안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것만 같은 긴장된 현실과, 상대를 증오하는 참담한 처지로 살아왔다.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중략)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 구름은 무심히 / 북(北)으로 흘러 가고, // 어디서 울려 오는 포성(砲聲) 몇 발, /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 목놓아 버린다.

구상의 「초토의 시8」가운데

 

북에 고향을 둔 시인(시적화자)은 죽은 적군의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까지 입히며 죽음은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럽다며 은원의 무덤 앞에서 목놓아 울고 있다.

 

증오를 넘어서지 않고는 가로막힘과 휴전선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작은놈이 걸핏하면 하는 위협이 '시험 백지 낼 거야'이다.

 

절대적 약세에 놓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폭 테러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북의 미사일 발사 역시 이런 것 아닐까. 거기에 대해 우리가 선제공격 운운할 수 있는 것일까.

 

미국 입장에서는 지구 경영을 위한 더 큰 이득을 위해 한반도는 사석으로, 졸(卒)로 쉽게 버릴 수도 있는 하나의 패일 수도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어떠한 경우라도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전부일 뿐이다.

 

평시 뿐 아니라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닐까.

 

8ㆍ15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최우선을 두고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관리해 나가는 것이다.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분노와 증오의 감정도 이제 넘어서야 한다.'는 말을 깊이 되새겨 본다.


 

문학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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