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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한 그루 나무 같은 사람
사회

한 그루 나무 같은 사람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08/25 00:00 수정 2006.08.25 00:00

수능 시험일이 70여일 남았다.

3학년들은 초조한 빛이 역력하고, 그들의 게으름이나 거드름이나 자포자기와 두통, 그 모든 것이 수능시험에 대한 압박감으로 이해되고 해석된다.

나도 고3 여름방학 때 엉뚱한 짓을 저질러 어머니의 애를 태운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터무니없는 짓이지만, 그때는 나름대로 정당했고 심각했다. 고3이었으므로.

교무실에 1학년 때의 학부모 두 분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담임 선생님의 표정이나 학부모들의 표정이나 모두 심상찮다. 녀석이 어지간히 속을 태우는 모양이다.

일류대학 법학과에 진학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아 옆도 뒤도 안 돌아보고 열심히 공부한 녀석이라는 것도, 그 부모들 또한 아이의 말이라면 거의 모든 것을 다 인정해 주었던 것도 기억이 나면서, 담임선생님의 심정도 어지간히 이해된다.

그런 학생과 학부모를 둔 담임들은 상당히 괴로운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아이와 학부모가 마음 속에 지어 놓은 집이 너무 견고해서 쉽사리 침범할 수도 부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쪽에서 보았을 땐 부수고 새 집을 짓는 것이 아이를 위해서도 부모를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나은 일이라는 걸 확신하기 때문에 당신들의 집을 부수어 보라고 권하고 싶지만, 그들은 도무지 스며들기가 어려운 예민한 상대들이다.

이 또한 선생으로서의 권위의식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16년 교단에 있으면서 나름대로 사람 보는 눈을 기른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언제부터 집들을 짓고 살았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적당한 안팎의 경계를 긋고
 기둥을 세우고 벽을 바르고 지붕을 이고
 사는 일이 저마다 집을 짓는 일일까
 몸이 하는 짓을 마음도 닮아
 마음도 들어앉을 집을 짓는데도
 재료와 구조는 다를 바 없다
 말을 재목으로 삼아
 막고 이고 가리고 세우고
 자기합리화의 도구로 다듬어 엮지 않으면
 하루 아침에도 무너지는 집
 사람의 일이란 모두 이렇게
 집을 짓는 일과 닮아 있을까
 
 집을 부숴 본 사람 가출한 사람
 쫓겨난 사람 집을 지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안다
 산다는 건 자기 집 자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몸이 기거할 집이 없는 자들은 거지라 하고
 마음이 상주할 집이 없는 사람은 정신이상자라 하지만
 
 그런데 나는 저기 저 사람을 안다네
 저 들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 같은 사람
 안팎의 집을 다 허물고 더 이상 집을 지을 일이 없는
 한 그루 나무 같은 사람
 ―백무산 , 「집」전문
 
"저기 저 사람" 같은 사람을 나는 알고 있는가? 안팎의 경계를 다 허물고 마음의 자유를 얻은 사람을 나는 알고 있는가? 나보다 퍽이나 어린 아이들에게 이 어려운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 폭이 좁은 선생 따위보다 사회와 인생을 더 잘 안다고 믿는 유능한 학부모에게 어떻게 이 전언을 말해 줄 수 있을 것인가?

날이 갈수록 고민이 깊어지는 시절이다.

배정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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