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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가을 저녁의 시
사회

가을 저녁의 시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09/08 00:00 수정 2006.09.08 00:00

 어느새 가을이다. 환절기라는 것이 사람을 참 고달프게 한다. 누구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지독하게 앓아서 자리에 드러눕는 경우도 생긴단다.

요즘은 매일 부고(訃告)를 받는다. 어떤 날은 하루에 네 번씩 부고를 받기도 한다. 사람들은 계절이 바뀔 때, 세상을 뜨고 싶은가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

오늘은 동료 K의 부친께서 별세하였다.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5년간 극진히 보살폈다는 얘기, 호상이라는 얘기, 치매에 걸린 노모를 20년간 모시고 있다는 얘기 등 상주(喪主)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들이 들린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참 효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오후쯤이면 자리에 앉은 채로 잠이 들어 들려주는 코 고는 소리를 못마땅해 했던 것이 미안해진다.

호상(好喪)이라는 말은 참 인간적이다. 부고에는 거리가 있다. 낯선 부고는 낯설 뿐이다. 그러나 이름 한번이라도 불러본 사람의 부고는 낯설어지지가 않는다.

부고의 거리는 참으로 솔직하다. 오늘 또 한통의 부고를 받았다. 그녀가 결혼을 하였고, 아기를 가졌는데,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오늘 그녀가 지상을 떠났다는. 서른넷의 그녀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통지를 받았다. 쓸쓸하다.
 
강원도 부론면 어디쯤 멀리 가서
서울의 미운 사람들이 그리워졌으면.
옛날 서울을 처음 올 때처럼
보고 싶었던 사람들, 그 이름들
어느새 이렇게 미워지고 늙었다.
다시 진부 어디쯤 멀리 떨어져 살아
미워진 사람들 다시 보고 싶게
시기와 욕심조차 아름다워졌으면.
가뭄 끝에 펑펑 쏟아지는 눈처럼
서울 어느 밤의 특설령처럼
못 견디게 그리운 사랑이 되었으면.
그러나 우린 모두 사라질 것이다.
                                                             - 고형렬, 「산머루」 전문

 
 살아가면서 괴로운 것은 분명 사랑보다도 미움이리니, 미워하는 것이 얼마나 처참한 일인가? 미운 놈도 그리워질 먼 곳, 어디쯤일까? 미워하면서, 미움을 견디면서 그렇게 살다가, 내리 붓는 눈처럼, 꼼짝 못하게 발을 묶는 폭설 같은 사랑을 꿈꾸다가, 그렇게 살다가 우리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쓸쓸하다."그러나 우린 모두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니 더 쓸쓸해진다.

그러나 말이다. 미워하더라도, 죽도록 미워하더라도, 사랑하더라도, 미치도록 사랑하더라도, 그러나 우린 모두 사라질 것이다라고,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우리라고 말하니 더 쓸쓸해진다.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 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김춘수, 「가을 저녁의 시」중에서

 어느 산 속, 고운 산머루가 될 그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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