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힘을 한 생애를 위해 거의 다 소진한 저 고요함.
그녀는 가끔 공원에 나와 실없이 웃기도 하고 낯선 사람들에게 친한 듯이 말을 건네기도 한다. 그녀를 본 적이 있다. 열린 창문 사이로 흘러나오던 음악, 뽕짝 메들리. 빙글빙글 돌아가던 그녀. 그녀는 아무도 보아주는 사람이 없는데, 하루 종일 음악을 켜 놓고 춤을 춘다고 한다. 필경 그녀의 어지러운 춤은 외로움을 떨어내기 위한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리라. 만해가 노래한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떨어지는 오동잎"은 절대자의 발자취가 아니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오동잎 스스로의 낙하라는 생각이 불현듯 지나가고, 노년의 고독은 이리도 독하게 춤추게 만드는 것인가 보다. 그래도 나는 다시 생각한다.
춤추는 그녀는 아직 싱싱하다고. 아버님 돌아가신 후
남기신 일기장 한 권을 들고 왔다
모년 모일 '終日 本家'
'종일 본가'가
하루 온종일 집에만 계셨다는 이야기다
이 '종일 본가'가
전체의 팔 할이 훨씬 넘는 일기장을 뒤적이며
해 저문 저녁
침침한 눈으로 돋보기를 끼시고
그 날도 어제처럼
'종일 본가' 쓰셨을
아버님의 고독한 노년을 생각한다
나는 오늘
일부러 '종일 본가'를 해보며
일기장의 빈칸에 이런 글귀를 채워 넣던
아버님의 그 말할 수 없이 적적하던 심정을
혼자 곰곰이 헤아려보는 것이다
-이동순, '아버님의 일기장' 전문 '終日 本家'라…… 그래도 화자의 아버지는 한자로 일기를 쓸 줄 아는 어른이다. 시의 화자는 열흘 중에 여드레를 종일 집에만 계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며 일부러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보는 착한 아들이다. 그런 착한 아들을 둔 아버지도 적적한 노년을 보내셨다는데, 한번 생각해 보자. 먹고살기 팍팍한 하루 하루에, 부모에게 제대로 받은 것(물질이든 정신이든)도 없어 노부모 섬기기를 빚으로만 여기는 자식들이 있다면, 부모 또한 어려운 한 시대를 살아내느라 배운 것도 이룬 것도 딱히 없다면, 그래서 한없이 쓸쓸하다면, 도시의 노인들처럼 저렴한 콜라텍이나 기원에도 제대로 갈 형편이 안 된다면, 이 작은 마을의 정물이 될 어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먹고살기 바쁜 자식들에게 짐 되지 않으려고 혼자 춤추고, 혼자 벤치에 앉아 있는 저 오동잎의 고요를 잠깐이라도 일렁이게 할 도시계획 같은 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