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가을로 온통 물들 금강산의 풍광 속으로 떠나보자.남북으로 나눠져 갈 수 없어 모데라토 칸타빌레 (그리움에 사무쳐서)로 불러야했던 가곡 ‘그리운 금강산’도 이제는 사무치게 부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 땅의 그 누구라도 금강산에 갈 수 있으며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왜 그토록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는지 확인 할 수 있다. 비무장 지대를 지나며 여전히 비장하고 선연한 분단의 아픔까지 덤으로 느껴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물리적으로 불과 30분 거리지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남쪽과 때 묻지 않은 북녘의 청정 풍경도 이쪽과 저쪽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하지만 이념과 철책으로 갈라놓은 민족의 동질성과 일체감은 ‘금강산 관광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로 우리에게 갈라져 보였던 일체감을 하나로 엮어주고 있다. 우리는 이제 중국 송대의 소동파가 “願生高麗國 (고려에 태어나서) 一見金剛山 (금강산 한번 보았으면...)”이라고 간절히 노래했던 금강산.
통일이 되면 꼭 한번 가보기를 꿈꾸었던 우리의 산하 금강산.
조선의 명필 양사언이 신선의 조화로 빚어낸 천하의 명산이라서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이라고 글을 남겼던 그 금강산을 땅끝 마을 해남 사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양산사람도 이제 무시로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9월의 금강산은 푸르기만 하다. 계곡마다 지천인 담(潭)과 소(沼)가 온통 푸른빛 이고, 바위사이의 소나무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다. 그 푸른 금강산이 가지 사이로 얼핏 가을 채비를 차리고 있다. 10월 중순이면 금강산의 또 다른 이름인 화려한 풍악산(楓嶽山)을 제대로 감상 할 수 있을 것 같다.이 가을 계곡미의 백미인 구룡연의 상팔담에서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을 떠올려 보고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만물상 산행에서 선경(仙境)도 경험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돌아오는 길 금강산 온천 노천탕에 들려 속세에 찌든 육신을 뉘어 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발행인 김명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