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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배우고 가르치는 일의 즐거움을 위하여..
사회

배우고 가르치는 일의 즐거움을 위하여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09/29 00:00 수정 2006.09.29 00:00

오늘도 아침부터 교문에서 야단이다. 마구잡이로 길러 헝클어진 머리에 넥타이도 매지 않고 웃옷 단추는 풀고 바지는 입기 시작하면서부터 한 번도 다림질하지 않은 모양에 목을 한껏 움츠리고 갈지 자 걸음으로 들어오는 한 떼의 아이들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을 불러 세워 훈계를 시작한다. 머리도 단정하게 깎고 옷도 다림질 좀 해서 입으라고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부드럽게 다정다감하게 말하면 말을 잘 들을 것 같은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아, 한껏 목청을 돋우고 야단을 쳐야 귀에 말이 들린다.

머리가 너무 긴 아이가 있다.

“너무 길다. 머리 좀 깎아라”
“…”
“머리가 단정해야지. 그게 뭐냐. 이번 주 중으로 깎도록 해라. 알겠지?”
“예(마지못해서)”

이런 대화가 있은 뒤 그 다음 주 월요일 아침 이 아이를 만났다. 머리는 그대로였다. 똑 같은 말을 또 했다. 그 뒤로도 반복했다. 1학기가 지나고 2학기가 되어서도 머리는 그대로였다. 이제는 서로가 습관이 되었는지 아침의 이런 만남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속으로 울컥했다. 엄한 체벌과 징계를 이용한다면 금방 저 아이의 머리 모양을 단정하게 바꿔놓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겨우 지도한다고 한 짓이 ‘머리 깎아라, 휴지 주워 와라, 규칙을 지켜라’고 한 것이 전부다.

쉽게 변하지 않는 아이들은 교문에서만 만나는 게 아니다. 수업 시간에도 만난다. 수업 시간에 거의 항상 자고 있는 아이도 있다. 왜 그렇게 잠이 많은 건지. 깨워 일으킨 다음 교실 뒤편에 서서 수업을 듣도록 해보기도 하지만 서서 잔다.

책과 공책 없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멍하니 있는 아이도 있다. 이유를 물으면 사물함이 멀어서 그렇다느니 아파서 그렇다느니 하면서 어제 했던 변명을 오늘도 한다.

이렇게 배울 준비가 안 된 아이들을 바라보며 교사는 속이 탄다.

가끔 교사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하는 때가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자연스럽게 교육에 대해 말하게 되는데, 듣다 보면 화제를 빨리 다른 것으로 돌려버리고 싶어진다. 교육이 잘못되고 있다는 지적에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 생활지도와 관련한 어려움을 말하는 것은 어린 아이의 투정 같은 것이 될 것 같아 말을 감추고 만다. 

 맹자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을 하는 것이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중 하나라고 한다.
이런 맹자가 부럽다.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적어도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들을 맹자는 만났을 것 같기 때문이다.

맹자도 아니고 천하의 영재도 아니지만,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들을 만나 배우고 가르치는 일의 지극한 즐거움을 누려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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