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연예인 굴욕 시리즈라는 걸 보여 준다.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다. 굴욕이라고 이름 붙여 놓은 것들은 별게 아니다.데뷔 초기 연예인의 촌스러운 스타일이나 성형하기 이전의 덜 다듬어진 얼굴 내지는 어색한 자세나 신체적 약점 등이 대부분이다. 굴욕이라기보다 한바탕 웃고 넘길 만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 장면들이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연예인들로서는 '민망함'정도가 될 성 싶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피치 못할 실수나 당사자에게는 고통스러운 상황까지도 굴욕이라는 제목으로 올려진 사진들도 있다. 이쯤에서 굴욕과 민망함의 사전적 의미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굴욕(屈辱)'은 '(남에게) 억눌리어 업신여김을 받는 모욕'으로 '굴욕을 당하다', '굴욕을 참다.' 등으로 쓸 수 있다. 반면에 '민망하다'는 '보기에 답답하고 딱하여 걱정스럽거나 안쓰럽다.'는 뜻으로 '혼자 떠나보내기가 민망하다'는 용례를 제시해 놓았다. 이 정의대로 본다면 '연예인 굴욕 사진'이라는 말은 단어 자체가 애초에 잘못 쓰였다고 볼 수 있다. 상대의 실수나 안쓰러운 상황을 굴욕으로 삼는 사회라면 참 재미없는 세상이다. 우리의 언어가 과격해지고 있다. 의도와 표현 사이의 거리(距離). 민망함과 굴욕의 거리(距離). 민망함을 굴욕이라고 말하면 굴욕이 된다. 그것이 말의 속성이고 말이 가진 힘이다. 민망함을 '그럴 수도 있음'이라고 위로하거나 격려해 주는 것이 아니라 '굴욕스러움'으로 조롱하고 비하시키는 것은 언어의 공해요, 폭력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전문
김춘수 시인의 <꽃>은 언제 읽어도 아름다운 시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고 증명한다. 나 여기 살아있노라는 말 한마디는 명백한 존재의 증거이다. 우리는 각자 제각각의 언어로 자기를 드러내고 누군가와 소통하고 다투고 어루만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말이란 시인이 말하듯 "나의 이 빛깔과 향기", 존재하는 것들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으로 불러주어야 비로소 그것(대상)은 꽃이 된다. 그것은 의도에 알맞은 표현, 실재에 알맞은 표현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내가 어떤 무엇에 대해 과장하지도 말고, 축소하지도 말고, 비틀지도 말고, 그 본질대로 제대로 말해 줄 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본래의 향기를 내는 꽃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