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몇 년 전 비를 맞으며 7차 교육과정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 해 찍었던 사진을 보았다. 그 때 그 시위에 참가한다고 동료교사들로부터 받았던 비난과 비판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거기다 대학원에서 이 문제를 놓고 벌인 토론에서 제대로 된 논의도 못했었기 때문에 교사로서 교육의 방향이나 정책에 대해 의견을 내고 행동한다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만 했다. 선배 선생님들은 교육정책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이기는 했지만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순종적인 태도를 보였다. 문제를 제기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과 행동은 무협지에나 나오는 의협심 정도로 간주되기 일쑤였다. 결국, 7차 교육과정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려했던 문제들이 나타나더니 이젠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 같다. 비로소 심각성을 깨달은 선생님들은 이제사 말을 바꾸어 그 때 왜 좀더 강하게 반대하지 않았냐고 한다. 요즘 사회는 교육에 대한 교사의 책임은 무한대로 지라고 하면서도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데는 교사들은 권한이 없는 것처럼 여긴다. 수업만 잘하면 훌륭한 교사라고 강조하는 바람에 어쩌면 교사를 단순한 지식 전달자 정도로만 여기는 것 같다. 수업이 잘 되려면 지식을 알기 쉽게 구조화해서 전달하는 기술만이 아닌 교사와 학생 간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한다.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 무수히 반복되어 교육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학교의 사정을 제대로 알게 되면 수업만 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사들은 생활지도를 하고 행정 업무까지 처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은 아이들과 어떤 일이든 협의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을 겪는다. 때로는 일치되어 고무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갈등하고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한다. 갈등은 성장과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기에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과도한 입시경쟁 속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는 교육의 본질과는 한참 멀어져 가고 있다. 생활지도에서 수업으로 다시 수업에서 생활지도로 이어지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는 이제 사무적인 것으로 바뀌어 사제간의 정이 사라지고 있다. 교육을 상품으로 보고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탕에서는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교육현장에서 이런 상황에 깊은 절망감을 느끼며 교육의 화석화가 되지 않으려면 교사는 교육의 방향과 정책 결정에 교육의 한 주체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려고 한다. 이러한 교사들의 의지를 화석이 되어 가고 있는 교육을 살리기 위한 순수한 노력으로 받아들여야지 교원단체의 이기주의로 봐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