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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낮은 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11/17 00:00 수정 2006.11.17 00:00

 수학능력시험 보는 날이다. 8년만에 입시추위가 올 것이라며 며칠 전부터 떠들썩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남쪽인 덕인지 그리 춥지는 않았다.

이웃, 직장 동료, 큰놈, 작은놈 친구들이 보낸 찹쌀떡, 엿, 초콜릿을 모아 포장을 뜯어내고 쌓아보니 책상 위에 수북하니 높다. 시험 잘 보라는 엽서,격려 전화, 문자 역시 초콜릿 무더기보다 더 풍성했다.

"좀 부담스럽네"

"부담스럽더라도 이렇게 격려해 주는 사람들 많으니 좋지?"

"그야 그렇지"

집사람은 한 달 전부터 수험생 도시락 어떻게 쌀까 걱정하더니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만든다고 만든 것이 기껏 초밥에 계란말이가 전부다. 그래도 과일 도시락, 전날 끓여둔 배추된장국, 결명자 차를 담은 보온병까지 챙기니 그것으로 쇼핑백이 가득 찼다.

"시험 치러 가는 게 아니라 어디 멀리 소풍 가는 것 같아"

듣기 좋아라고 큰놈이 웃는 얼굴로 제 엄마 맘을 어루만져 준다.

시험 점수로 높은 산, 큰 산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왕 치는 시험, 높은 점수 받았으면 좋겠다. 실수하지 말고 제 모든 능력 다 발휘해서 제 능력으로 받을 수 있는 점수 한껏 받았으면 한다. 그래서 부모는 백일기도도 하고 철야기도도 하는 것이고 아이들도 공휴일을 반납하고 심야자율학습도 자원해서 주당 100시간에 가까운 초고강도 학습 노동을 했던 것이다.
 
산이라 해서 다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다 험하고 가파른 것은 아니다. 

어떤 산은 크고 높은 산 아래 시시덕거리고 웃으며 나지막히 엎드려 있고 또 어떤 험하고 가파른 산자락에서 슬그머니 빠져 동네까지 내려와 부러운 듯 사람 사는 꼴을 구경하고 섰다.

그리고는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순하디순한 길이 되어 주기도 하고 남의 눈을 꺼리는 젊은 쌍에게 짐즛 따뜻한 사랑의 숨을 자리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낮은 산은 내 이웃이던 간난이네 안방 왕골자리처럼 때에 절고 그 누더기 이불처럼 지린내가 배지만 눈개비나무 찰피나무며 모싯대 개쑥에 덮여 곤줄박이 개개비 휘파람새 노랫소리를 듣는 기쁨은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들이 서로 미워서 잡아죽일 듯 이빨을 갈고 손톱을 세우다가도 칡넝쿨처럼 머루넝쿨처럼 감기고 어우러지는 사람 사는 재미는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이 다 크고 잘난 것만이 아니듯 산이라 해서 모두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모두 흰구름을 겨드랑이에 끼고 어깨로 바람 맞받아치며 사는 것은 아니다.

신경림의 「산에 대하여」전문
 
시인(시적화자)은 '높은 산'보다 '낮은 산'에 대해 더 우호적이다. 산을 사람으로 그렸다. 사람 가운데 도인 같은 사람으로 그렸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 보통 사람들과는 저만치 홀로 떨어져 가파르고 험하게 치솟아 있는 이가 아니다. 낮은 자리로 스스로 내려와 있는 이다. 사람 곁에서 사람과 가까이 있으면서 사람들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숨을 자리가 되기도 하고, 더 높은 산에 쉽게 오르게 해 주는 발판과 디딤돌이 되기도 하며 사람 사는 이런저런 재미도 아는 이다.

시험 하나만 보고 어른의 문턱까지 내몰리듯 살아온 아이들이다. 이 시험 끝나고 나면 먼저 스스로를 돌아볼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 지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 이 시가 삶의 오솔길 한 자락을 밝히는 작은 별빛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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