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 수시 모집이 끝난 뒤, 수업을 해 보니 거의 모든 것이 끝난 느낌이었다. 더욱이 출석을 부르기도 힘든 상황이 나타나기도 한다. 속에서 타오르는 원인 모를 절망감과 분노에 창 밖을 응시하다가 그래도 교육은 이루어진다는 생각에 갈릴레오를 연상하며 다시 분필을 들었다. 2학기 들어 교실은 무위(無爲)의 시·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그나마 수능을 준비하는 몇몇의 아이들을 위해 사명감으로라도 수업을 진행했다. 몇 번이고 기를 쓰고 헛기침을 해대며 하던 수업도 어느 순간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으로 바뀌고 말았다. 수능을 준비하던 아이들마저 이제 더는 선생님의 수업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자습을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간신히 수행평가와 기말고사를 끝내고 자습을 하는 시간을 늘렸다. 공황 상태를 벗어나고자 아이들에게 대안을 제시했다. 한자와 영어 학습지를 만들어 배부하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학교에서 얻고 가는 것이 있기를 기대했다. 거기다 막연한 공부는 동기 유발이 되지 않을 것 같아 한자검정능력시험에 응시하도록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아이들은 마냥 노는 것만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수능이 끝나고 모두들 홀가분한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의 시작은 수능 이후다. 학교에 등교할 동기가 전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정상수업을 할 것을 강조하지만 그렇게 되기란 애시당초 그른 일이기에 아이들과 담임은 어쩔 수 없이 갈등 상태에 놓이고 만다. 출석부에는 비가 내리고 오지 않는 아이들을 기다리며 전화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분명 잘못된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짚어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답답하다. 삶은 치열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강조하지만 절박함이 없는 경우에는 마음에 새기기 어려운 일이란 것을 느낄 수 있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다그치듯 질문을 해 본다. 수능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느냐고 말이다. 대부분 대답이 없다가 그래도 다행히 누구는 대답을 한다. 진지하게 고민하며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지만 겉도는 느낌이다. 참담한 심정으로 교무실에 돌아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수능 이후 오랫 동안 아이들이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은 실제 아이들 탓만이 아니다. 선발 기능에만 충실한 입시 제도가 그 탓이다. 제대로 된 입시제도라면 선발 기능에만 충실한 것이 아닌 과정을 충분히 겪도록 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어떤 대학에만 합격하면 그만인 상황을 만들고 보니 수능 이후 시간은 아이들에겐 불필요한 시간으로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물론 모두가 수능 이후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라고 위안을 삼지만 고등학교에서 대학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 하나가 빠져 있는 것이다. 한국 고3의 실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이상 사회는 고등학교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는 입시제도가 무엇인지 제대로 고민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