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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여성을 물건 취급하는 신문소설..
사회

여성을 물건 취급하는 신문소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11/24 00:00 수정 2006.11.24 00:00

청소년 시절 집으로 배달되는 일간신문의 정치면은 딱딱하고 어려운 말들로 가득해 자세히 읽은 적이 별로 없지만, 소설이 있는 지면만큼은 내 눈길을 붙들었다.

주위의 누구도 성(性)에 관해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던 시절, 그곳에는 은밀하고 불온한 궁금증을 충족시켜주는 세계가 거칠 것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근엄하고 점잖은 다른 기사들 속에 둘러싸인 신문연재소설의 적나라한 성적 묘사와 삽화는, 어른들의 의심을 받지 않고도 합법적으로 성적 호기심에 접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다. 어린 나이의 내게 정서적 충격을 주었던 것은, 흔히 어른들이 짐작하듯 신문연재소설이 노골적이고 낯 뜨거운 성적 묘사에 재미 붙일 때가 아니라, 성과 관련하여 엽기적이고 잔인한 내용도 서슴지 않을 때였다.  

 당시의 신문 편집자가 신문연재소설을 비공인 성교육 학습의 방편으로 삼았던 나의 처지를 헤아렸을 리는 없다. 잔인하게 다루어진 성적인 내용에 어린 마음이 상처를 받아도 아랑곳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신문이 상정하는 독자는 청소년이 아닌 어른들이다.

어른들 중에서도 어느 계층과 연령, 어떤 성별을 주요독자로 삼느냐 하는 것은 신문사마다 다르다. 보수적 논조를 깔고 있는 신문들은 40대~50대 중산층 중·장년 남성을 주요 독자로 삼는다. 소설을 연재할 때도 자연히 이들 주요독자들의 입맛에 맞추려고 애를 쓰게 된다. 최근 음란성이 한창 지적되고 있는 신문사 연재소설들도 중년 남성들의 심리를 분명히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노골적인 성적 묘사로 한국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밥 먹듯이 경고를 받아왔고, 열린우리당 정청래 의원과 한바탕 싸움을 치르느라 유명해진 문화일보의 연재소설 ‘강안 남자’에 나오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성에 탐닉한다. 소설은 성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뒤튼다.

관음, 성매매, 헤어진 아내에 대한 납치 강간 등 소설에서 남자들은 사람의 상상이 할 수 있는 엽기적인 성을 모조리 동원한다. 이들에게 성은 상대방과 같이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대를 철저히 자신의 욕망 아래 대상화하는 일방적인 폭력에 가깝다.

성은 지배욕과 권력욕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성폭력과 성관계를 구별하지 못하는 소설은 읽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상대 여자들은 자신의 욕망은 뒷전이고 남자의 욕망에 순순히 복종하며, 자기 몸이 아무렇게나 취급받아도 개의치 않는다. 불쾌함을 넘어 기분이 ‘더러워진다.’

그렇다고 여자의 지위만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다. ‘철봉’이니 ‘대권’이니 하는 등장인물의 이름들은 우스꽝스럽게도 남자의 성기를 상징한다. 성기가 모든 것을 제치고 한 사람의 표상이 될 수 있을까. 성기를 남자의 성적 능력과 연관시키고, 성적인 것을 남성의 자질과 동일시하겠다는 욕망, 여성에 대한 성적인 지배를 통한 우월감의 확인은 여성 못지않게 남자 스스로를 사물화하고 황폐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나 작가는 남자들의 내면이 황량하게 치닫도록 마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여성을 소비하면서 남자들은 욕구 충족보다는 ‘가슴이 빈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울기도 한다. 중년 남성들이 희한한 행각을 저질러서라도 달래고 싶은 공허감을 알아 달라는 것이다.

급기야 자살이나 병사로 삶을 끝내어 비감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그 공허감은 남성들의 확고한 우월적 지위가 예전 같지 않은 현실, 구체적으로는 외환위기 후 고용불안과 실업을 정면에서 감당해야 했던 중산층 장년 이후 남성들의 불안을 반영한다고 볼 봐야 할 것이다. 

 여성을 노리개같이 소모하고도 그것의 정당성을 웅변하는 소설이 장기간 연재될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시민단체들은 신문연재소설들의 노골적인 성적 묘사가 청소년에게 미칠 유해성을 우려하지만, 여성을 물건 다루듯 하고 싶은 남자의 일그러진 욕망이 합리화되는 것만큼 해로운 건 없을 것이다. 신문연재소설의 유해성 논의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정문순/프리랜서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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