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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누가 울어
사회

누가 울어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11/24 00:00 수정 2006.11.24 00:00

가요무대-배호의 노래를 듣다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며칠 전 그녀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무척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퇴근길에 눈물이 났다고. 내 신세가 왜 이리 되었느냐고.

그 쓸쓸한 목소리가 오래 귀에 남아 있어서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늦은 밤의 전화에 놀란 그녀에게 티비를 켜고 배호의 노래를 들어보라 했다. 뜬금없이 왠 배호?

"들어라 이 남자의 노래를, 스물아홉에 가버린, 영원히 슬프게 노래할 이 남자의 노래를, 그래도 너는 마흔 둘이 아니냐고. 알뜰한 딸 둘이 있지 않느냐고" 지독한 무드였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찬바람이 불었고, 일찍 잠든 동네의 고요, 젊은 트로트 가수의 꺾어지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한없이 흐뭇한 어머니의 표정에서 나는 삶의 가벼움을 보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활기차고 담대하고 사려 깊고 명민해서 고달픈 그녀에게 나는 배호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다.
 
 사람 모여 사는 곳 큰 나무는
 모두 상처가 있었다.
 흠 없는 혼이 어디 있으랴?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
 오후내 저녁내 몸 속에서 진 흘러나와
 찐득찐득 그곳을 덮어도 덮어도
 아직 채 감싸지 못하고
 쑤시는구나.
 가만, 내 아들 나이 또래 후배 시인 랭보와 만나
 잠시 말 나눠보자.
 흠 없는 혼이 어디 있으랴?
 -황동규, <오늘 입은 마음의 상처> 전문


스물일곱에 죽은 이상. 윤동주는 스물여덟에 죽었고, 김유정은 아마 스물아홉이었지? 이 숫자들이 불러일으키는 서러움. 개인적으로 시대적으로 견뎌야했을 그들의 아픔.그들 통증의 발성이 다른 영혼들을 치유하는 이 세상의 모순된 이치.

위의 시편에 나오는 랭보, 흔히들 불멸의 천재시인이라 이름 붙이는 데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 랭보는 열아홉 살에 시인으로서의 성취를 마무리하고 나머지 16년 동안 세상을 떠돌다 결국 서른일곱에 지상에서의 생을 마감했다.

그의 생애를 읽다보면 고통이라는 말이 참 가벼워지기도 한다.

지금 저는 가능한 최대한 방탕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왜냐구요? 시인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라고 그의 스승에게 보낸 편지는 조숙한 십대의 객기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세상이 어찌 천재성만으로 다 견디어낼 수 있는 곳인가. 더더군다나 객기라니.....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느냐고,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진 듯한 이 열아홉의 객기.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같은 이슬비
 누가 울어 이 한밤 잊었던 추억인가
 멀리 가버린 내 사랑은 돌아올 길 없는데
 피가 맺히게 그 누가 울어 울어 검은 눈을 적시나 
  -배호, <누가 울어> 1절



나는 음치인 그녀에게 배호 선생의 테이프를 보내줄 생각이다

퇴근길에 차 안에서 들어보라고. 어쩌면 좀 덜 쓸쓸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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