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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드라마 ‘황진이’를 보며..
사회

드라마 ‘황진이’를 보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12/08 00:00 수정 2006.12.08 00:00

서로 다른 상황과 관점에서 공통된 이야깃거리를 찾아 소통을 하는 일이란 참으로 어렵다. 심지어 함께 사는 아내와도 하나의 이야깃거리로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은 또 오늘 같은 날이 계속 될 것 같은 권태로운 일상에서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찾고 싶다. 이럴 때, 안방극장의 드라마는 참 좋은 역할을 한다.

요즘 아내와 함께 열심히 보는 드라마가 ‘황진이’다. 동일한 시·공간에서 하나의 드라마를 보며 동상이몽이더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생긴다. 드라마가 역사 속에서 끌어낸 황진이는 우리 부부에게 토론과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부부 간의 관계를 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의 대표가 되기도 한다.

아직까지 치열한 논쟁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드라마에 빠져들수록 둘 사이의 논쟁은 부부싸움을 훌쩍 뛰어넘은 남자 대표와 여자 대표 간 벌어지는 A매치로 치달을 준비를 하고 있다.

어제 드라마의 한 장면은 이랬다. 황진이가 벽계수의 첩이 되지 않기 위해 10명의 양반들과 시로 대결을 벌이는 것이었다. 일필휘지(一筆揮之)의 황진이가 여지 없이 이기고 양반들은 벌칙으로 옷을 벗는 장면이다. 속으로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옆에 앉아 있는 아내를 슬쩍 쳐다보니 눈가에 웃음이 자글자글하다. 크게 소리 내어 웃지는 않지만 통쾌하고 후련했을 것 같은 눈치다. 속으로 부아가 치민다. 아무리 드라마 전개상 황진이의 시 짓는 능력을 부각시킨다고 하더라도 저건 지나치다 싶다. 거기다 그걸 좀 냉정하고 비판적으로 보지는 않고 즐기고 있는 황진이와 같은 여자인 아내에게 시비를 걸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바로 논쟁을 일으킬 수는 없어 벽계수를 너무 호색한으로 그리고 있다는 한 마디만 던지고 말았다. 아무튼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 우리 부부는 토론과 논쟁을 할 것 같다.

드라마는 여러 가지로 유익한 교육 자료가 될 수 있다. 물론 좋지 않은 점도 있겠지만, 실제 상황을 잘 보여주는 자연적 재료가 된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한다고 엄숙한 교과서적 내용을 말하면 큰 효과가 없지만, 드라마 한 편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접근하면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한다고 한다. 사람들도 빠르게 변화한다고 한다. 너무 빠르게 변화해서 그걸 따라잡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세상과 사람의 변화를 의사소통 방식의 변화로 이해하면 접근이 쉬울 것 같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아이들과 소통 방식이 문제가 되고 있다. 손 끝 하나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 같은 세상에 사는 아이들과 소통하기란 어렵다. 그렇다고 서툴게 아이들의 방식을 사용하면 바로 강퇴 당하고 만다. 그럴 바에야 가장 잘 알고 있는 익숙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드라마는 아이들과 말 걸기에 참 좋은 재료의 한 예가 될 것 같다. 드라마를 통한 소통은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다.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찾는 것은 많은 교육문제 해결의 방법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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