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반. 작은놈이 데리러 오라는 연락이 없어 전화를 걸었더니 전원이 꺼져 있다는 말이 나온다. 기말고사 시험기간이라 손전화를 가져가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뒤에 한참을 서 있어도 모르고 문제만 풀고 있다. “이제 가자” 했더니, 독서실에서 12시 반까지 공부하고 친구랑 걸어오겠다고 한다. 12시 전에는 꼭 자야한다며 가자고 했더니 정리되지 않은 부분 정리하고 갈 테니 먼저 가라고 한다. 안쓰러운 마음에 방 밖으로 나와 서성이고 있었더니 기말고사 공부하러 왔던 녀석들이 우루루 나가며 인사한다.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 눈부셔 눈부셔서 알았습니다. /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 저녁이 오는 소리 가만히 들었습니다. / 흰 실과 검은 실을 더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나희덕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전문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었던 복숭아나무(부모님)를 이해하는 과정이 나타나 있다. 시적화자와 시인을 동일시하면 화자의 부모님이 가족보다 불우했던 이웃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더 많이 쏟아 부었던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부모님이 처음에는 너무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 그 삶을 닮으려 할 수 없다고 멀리 지나치기만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지닌 여러 겹의 마음을 읽게 된 화자가 마침내 부모님의 그늘 속으로 들어가서 흰 실과 검은 실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질 때까지 함께 한다. 결국 복숭아나무의 외로움과 심심함, 황혼녘의 쓸쓸함까지 이해하게 된 것이다.사흘 낮 사흘 밤 봄비 젖어 내리더니 고샅길 따라 휘어진 무논에 파스텔톤 푸른 하늘이 깔렸다. 그런데 솜방망이꽃 까치발하고 넘겨보는 저기 무슨 꿍꿍이가 있어 저리 환할까. 무논 얕은 물 속에 서너 개 움푹 파인 황소 발자국 안 햇살 조밀조밀 아물아물 몰려 빛난다. / “파드득” 올챙이 한 마리 알껍질 뚫고 튀어나온다. 하늘 한 자락이 술렁이고 낮달이 살풋 웃는다. // 저놈 애빌까. 주먹만 한 두꺼비 한 마리 무심한 척 큰 눈 껌벅이며 지키고 앉아 있다. // “괜찮다. 맨날 지게 지던 어깨라 그냥 걸으면 허전하구나.” / 신작로까지 오리 길 한사코 당신이 지고 와서 버스 뒤쪽 뿌연 먼지 속에 한 모롱이 돌아서고도 서 있던 아버지.졸시 「고향의 봄」전문그 때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했을까. 자취하며 대학 다니는 이제 키도 더 크고 몸무게도 더 나가는 아들 먹을 쌀이랑 찬거리 지고 와서 버스 정류장에 내려주고도 지게를 벗지 않았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