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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사회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6/12/22 00:00 수정 2006.12.22 00:00

수다를 떤다. 수다는 가볍다. 수다는 의도가 없다. 없어야 한다. 그래야 수다가 된다.

상대를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것은 무겁고 힘들다. 그러므로 수다가 아니다. 그것은 계략이고 음모이다. 그러나 수다는 수다일 뿐이다.

수다는 텅 빈 여자들이 떠는 것이 아니라 텅 비고 싶은 여자들이 떠는 것이다. 떨어내고 떨어내어도 삶의 스트레스가 또 쏟아져 나오겠지만, 일단 수다는 떨어내어 텅텅 비워내는 것이다. 따라서 수다는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환하다.

K는 남편이 술을 마시고 또 지갑을 잃어버리고 왔단다. 삭발 투쟁해서 학생 때 결혼한 사정과 철없이 사랑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 술버릇의 원인을 규명하고는 어수선한 마음을 정리한다.

S는 남편이 술을 마시고는 트럭 위에서 자고 왔다 한다. 신발은 트럭 앞에 고이 벗어 놓고. 그러자 사람들이 트럭 밑에 안 잤으니 천만다행이라고 위로한다. 그게 과연 위로가 될까?

젊은 K는 며칠 전 자기 남편이 남의 집 현관 앞에서 신발 벗어 놓고 자다가 정신이 들어 깨어서는 집으로 돌아왔다고. 술이 깨어 정신이 든 남편은 좀 창피스러웠던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올라왔더라고.

K(남)는 술 마시다가 자기가 결혼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참, 세상에 이런 일이.

남자들은 어떤 수다를 떠는가? 여자들은 주로 집안 얘기를 한다. 여자도 여러 부류이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줌마들이다.

애들 크는 얘기, 또는 키우는 얘기, 남편이야기, 시집 이야기, 주로 그렇다. 그 중에도 아무도 모를 부부간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그 이야기는 나오는 중에 미리 머리 속에서 걸러지고, 꾸며지고, 삭혀졌으니, 우리는 부부간의 일을 다 포착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다를 통해 떨어내는 순간에 그때의 괴로움은 이미 추억이 되고 만다.
 
 결혼 전 내 여자와 산길을 오른 적이 있다
 오붓한 산길을 조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 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숨길 곳을 찾다가
 적당한 바위틈에 몸을 숨겼다
 나를 바위 뒤에 세워 둔 채
 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돼
 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딱 거기 서서 누가 오나 봐봐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고
 그녀는 보여 줄 수 없으면서도
 아예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고
 그 거리, 1cm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
 바위를 사이에 두고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내통(內通)하기 적당한 거리

   윤성학, <내외> 전문



내통의 은근함 내지는 은밀함, 은밀함의 막중함, 내통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음으로 해서 겪어야 할 무거움. 그 무거움을 기꺼이 견디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수다를 떤다.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떨어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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