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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7/01/02 00:00 수정 2007.01.02 00:00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을 소개해야 할 때면 나는 으레 내 이름을 풀어서 이야기한다. 앞에서 두 자 떼어 읽으면 문학(文學)이고 뒤에서 두 자 떼어 뒤쪽부터 읽으면 철학(哲學)이 된다. 선친이 여러 아들 중 글을 쓰는 아들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그리고 이왕 글 쓰는 사람이 될 것이면 밝고 환하게 세상을 밝힐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해서 지어준 이름인데 그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국어 선생으로 文學을 가르치고 있으니 선친의 뜻을 얼마쯤은 따른 셈이라고 위안하고 있다. 이렇게 자기소개를 한 다음이면 사람들이 대개 문학철(文學哲)이라는 이름과 나를 연결해서 기억하여 잘 잊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 뜻을 따라 살아 온 셈이다. 그런데 다음 시의 화자는 부모님의 바람과 배치되는 길을 걷고 있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서도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자책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온 길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이 부정적일지라도 똑바로 살겠다고 각오를 다지는 시적화자의 태도에서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고 있다.

아버지는 내가 법관이 되기를 원하셨고
가난으로 평생을 찌드신 어머니는
아들이 돈을 잘 벌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어쩌다 시에 눈이 뜨고
애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나는 부모의 뜻과는 먼 길을 걸어왔다.
나이 사십에도 궁티를 못 벗은 나를
 살 붙이고 살아온 당신마저 비웃지만
 서러운 것은 가난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시대는 없는 사람이 없는 대로
맘 편하게 살도록 가만두지 않는다
 세상 사는 일에 길들지 않은
 나에게는 그것이 그렇게도 노엽다

내 사람아,
울지 말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아라
평생에 죄나 짓지 않고 살면 좋으련만
그렇게 살기가 죽기보다 어렵구나
어쩌랴, 바람이 딴 데서 불어와도
마음 단단히 먹고
한 치도 얼굴을 돌리지 말아야지
정희성의 「길」전문

대학 입시 하나만 보고 3년을 내몰리듯 살아온 고3 큰놈이 수시2학기 시험에 끝내 합격하지 못해 27일에 마감한 2007학년도 정시 모집에 원서를 냈다. 정시는 수시와 달리 이미 받아 둔 내신 성적과 수능 성적을 가지고 세 곳을 선택하는 것이라 남들처럼 하나쯤은 틀림없이 합격할 곳이라 믿는 곳에 원서를 내고 나머지 두 곳을 고르는 방식으로 원서를 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전문

시련은 견디고 이겨내고 보면 추억이 되고 더 가치 있는 삶으로 단련한 과정이 된다. 수시에서 연달아 쓴 잔을 든 딸에게, 그리고 그 비슷한 경험을 했고 또, 할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이다.

나도 벌써 반백년을 살았다. 아들은 늙을수록 아버지를 닮아간다더니 나도 그런 것일까. 딸이,아들이 글 쓰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도 또한 욕심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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